어디 사느냐에 따라 사람값 다른 현실
함께 행복해지려면 노동 격차 줄여야

한때 세상 사람들이 100명이라고 했을 때 내가 가진 물질과 삶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는 이야기가 온라인에 유행한 적이 있다. 지구 상의 남과 여, 인종과 종교의 분포를 알려주고, 물 부족과 전쟁과 폭력, 기아에 시달리는 비율을 말해 준다. 그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마지막에 나온다. "100명 중 2명만이 컴퓨터를 가지고 있고, 14명은 글을 읽지도 못합니다." 말하자면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다른 이들보다 충분히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글에서 인용한 통계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잘 모르지만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열 번은 넘은 것 같으니.

한데 그 글에는 결정적인 맹점 또는 글쓴이가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것이 있다. 바로 노동시간에 관한 문제다. 100명이 사는 지구마을을 다시 한번 상상해 보자. 빈부 격차와 기아, 분쟁, 전쟁과 테러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거기엔 100명의 노동력이 존재하고, 100명이 경작해서 식량과 생필품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가 있다. 100명 중 50명은 농부와 어부가 되어 식량을 생산하고, 30명은 산업노동자가 되어 주택과 의류, 각종 생필품을 생산한다. 그리고 15명은 의료와 교육을 담당하고, 나머지 5명은 생산물의 이동과 관리를 담당하는 서비스 일을 맡는다. 서로 일한 시간을 기준으로 노동생산물을 교환한다면 분쟁이나 기아, 빈곤이 생길 일이 없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토양은 잘만 관리하면 사람 130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비옥하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100명 지구마을 사람 중에서 20명은 영양실조고 1명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거꾸로 15명은 비만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 해답은 다음 문장에 나온다. "이 마을의 모든 부 가운데 6명이 59%를 가졌고, 그들은 모두 미국 사람입니다." 물론 이 비율 또한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식량을 생산할 땅이 몇몇에게 독점되고, 노동의 교환수단이었던 돈이 축적되어, 이자와 빚을 만들었다. 그리고 빚은 다시 노예 노동을 만들어 부를 더욱 한 곳으로 몰아 주는 역할을 했다.

심각한 것은 빈부 격차가 날이 갈수록 더 벌어진다는 점이다. 거기엔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그중 핵심적인 것은 사는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사람값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 사는 사람이 한 시간 일해 만든 운동화를 아프리카 사람이 구입하려면 커피 농장에서 50시간이나 일을 해야 한다. 알고 보면 유럽 사람이 만들었다는 운동화는 실제로는 중국 사람들이 만들고, 브랜드와 디자인만 유럽에서 개발한 것이었다. 유럽이나 아메리카 사람들이 짧은 노동시간과 긴 휴가를 누리면서도 자동차를 굴릴 수 있었던 이유이다.

서성룡.jpg

인간에게 가치 있는 것은 예외 없이 타인의 노동이 많이 들어간 것들이다. 기술과 장비의 가치란 그것을 갖지 못한 자들로부터 우위를 갖는 독점력에 지나지 않는다. 토지에 대한 독점력과 마찬가지로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가치를 만들지 못한다. 다만,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노예 노동이나 다름없는 값싸고 긴 노동을 시킬 힘을 갖는다. 100명 지구마을에 사는 노동자가 자동차와 컴퓨터를 소유한 5명 안에 들어도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식량과 생존 물품을 마련하려고 빚을 지고, 장시간 값싼 노동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구마을 사람들이 행복해지려면 남보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기보다는 다 함께 행복해져야 한다. 노동의 격차를 줄이고, 토지나 시설 기술에 대한 독점력을 억제해야 하는 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