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월급 40만 원…직장인 '10분의 1'
청년복지 차원 전역축하금 지급했으면

유신 말기인 1978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학교는 겉으로는 조용했다. 수업이 비는 시간엔 교정의 벤치에서 친구들이랑 잡담을 하곤 했다. 그러면 어디선가 잠바차림의 중년남자가 나타났다. 사복형사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씨알의 소리> 잡지를 몰래몰래 파는 사람이 있었다. 언로가 막힌 그 시절 단비와도 같았다.

2학년이 끝나갈 무렵 '10·26 사건'이 터졌다. 박정희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학교는 술렁이기 시작했고 며칠간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학기가 끝날 무렵 또래 절반이 휴학계를 냈다. 나도 휴학계를 냈다. 그해 말쯤이나 늦어도 이듬해 초엔 영장이 나온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여름이 다 간 1980년 9월에야 영장이 나왔다.

'진주장정'으로 입대해 논산서 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마치고 연무대에서 야간열차로 '배출'됐다. 당시 사병진급에 6-9-10개월 걸렸다. 1983년 1월 제대(교련 이수로 4개월 단축)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병장 월급을 받았다. 거금 4000원이었다. 그전 달의 3600원에서 400원이 올랐다.

그해 복학해서 이듬해 4학년 2학기(1984년 가을)에 모 중앙일간지에 취직을 했다. 6개월 연수를 마치고 정식으로 받은 초봉이 월 40만 원이었다.(당시 삼성그룹은 33만 원) 내가 마지막으로 받은 병장 월급의 꼭 100배였다. 지금 그 신문사 신입사원 초봉이 400만 원이 넘는다. 액수의 과다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그만큼 물가가 올랐고 세상이 변했다는 얘기다.

며칠 전 국방부는 내년부터 사병 월급을 대폭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병장의 경우 현행 21만 6000원에서 40만 5700원으로 오른다고 한다. 대략 두 배에 해당한다. 인상 폭으로 보자면 역대 최고가 아닌가 싶다. 인상이 너무 늦었고, 시세에 비춰보면 그리 많지도 않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이 군대다. 속 모르는 사람은 그런 군대에서 뭔 돈이 필요할까 여길 수도 있다. 혹 나이 든 분 가운데는 우리 때는 더 적은 월급을 받고도 살았노라고 얘기하실지도 모르겠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얘기는 온당치 못하다. 월급 40만 원을 받던 병장이 제대하여 취직하면 하루아침에 '초봉 400만 원'짜리 월급쟁이가 될 수도 있다. 병장 월급의 무려 열 배다. 다시 말해 군은 병사들에게 사회 월급의 10분의 1일에 해당하는 월급을 주는 셈이다. 혹자는 국방예산을 거론하거나 또는 '의무복무제'를 들먹이며 현실론을 펼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 같다.

내가 군 생활 할 때 내무반 동료 가운데 상당수는 집에서 돈을 가져다 쓰곤 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부대에서 크게 사치를 한 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가끔 주말에 동기들과 몇이 외출을 나가서 바람 쐬고 오는 게 전부였다. 돈이란 쓰기 나름이다. 병장 월급 40만 원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에겐 많을 수도 있고, 반대로 어떤 사람에겐 부족할 수도 있다.

정운현.jpg

일전에 어느 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대학을 나온 취업준비생 가운데 상당수는 1000만~ 2000만 원 정도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대개는 학자금 융자를 받은 돈이라고 했다. 대학 문을 나서면서부터 취직은커녕 빚쟁이 신세라니. 추천서 한 장만으로도 직장을 골라잡던 시절을 생각하면 천당과 지옥의 차이 같다.

제대하는 젊은이들이 단돈 500만 원이라도 손에 쥐고 나오게 할 순 없을까? 한 학기 등록금이라도 제 손으로 낼 수 있게. 정부에서 '전역 축하금'으로 지급하면 더욱 좋을 테다. 따지고 보면 이 역시 청년복지의 일환이 아니겠는가? 빈손으로 제대해 허둥대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