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쓰 나루미 지음·권혜미 옮김
분필 만드는 일본이화학공업 이야기
직원 70% 지적장애인…저자 인터뷰
각자 이해·배려하는 분위기·시스템
이윤·급성장 대신 '삶의 가치'발견

'졸업 후 직장이 없으면 부모님과 떨어져 평생 시설에서 지내야 합니다.', '일을 경험해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1959년 어느 날 도쿄 도립 아오도리 양호학교(특수학교)의 하야시다라는 선생님이 회사를 찾아왔다. 졸업한 학생들 고용해달라고 부탁했다. 냉정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 두 가지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분필을 만드는 일본이화학공업(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의 오야마 야스히로 회장은 지적장애인을 고용하기 시작했던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일본이화학공업은 직원 70%가 지적장애인이다. 1959년 당시 27세였던 오야마 야스히로는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창업주 오야마 요조)가 자신의 결정에 화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회사가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라고 격려했다. 이게 시작이 됐다.

일본이화학공업은 이미 일본에서 유명하다. 2008년 경영학자 사카모토 고지가 쓴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회사>로 알려졌고 그해 TV도쿄방송에도 소개되면서 이윤 지상주의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기업의 가치를 전했다.

일본이화학공업은 '행복을 창조하는 회사'라고 불리며 급격한 성장을 바라는 대신 장애인 고용과 분필의 품질 개량, 점유율 확대, 자사의 주력상품 개발에 매진한다. 거창하게 사회정의라든지 인생의 사명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안전하고 정교한 분필을 만들려고 애쓴다.

가와사키 공장 1층 분필제조라인, 직원 15명이 모두 장애인이다. 이들의 집중력이 대단하다. 배합, 압출, 절단, 코팅, 포장 등 각각 공정에서 흐트러짐 없다.

저자는 경영진뿐만 아니라 직원 한명 한명을 만나 취재를 했다. 저자는 인터뷰가 자칫 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들은 막힘없이 설명을 해주며 능숙한 손놀림을 이어갔다. 장애인들이 정확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비결은 획일적으로 가르쳐주기보다 직원이 가진 각자의 이해력에 맞추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글자로 된 시계를 읽을 수 없는 이를 위해 모래시계를 두고, 색으로 사물을 구별하는 이를 위해 색에 맞춰 재료를 계량하게끔 공정을 바꿨다.

이는 아주 단순한 실무 예이지만, 어느 조직에서나 필요한 관용과 배려, 이해다.

일본이화학공업은 아무래도 불가능해가 아니라 항상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를 고민했다. 이는 자동시스템으로 얻을 수 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치를 끌어올렸다.

비장애인 직원이 '키트파스' 제조의 에이스 혼다 신지 씨를 존경하는 사내 분위기도 장애인은 돌봐줘야 하고 무엇을 위해 해줘야 하는 존재가 아님을 보여준다.

신지 씨는 '자폐증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그의 어머니 유코 씨를 만나 신지 씨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듣는다. 그녀는 "아들의 인생이 빛나기 시작했다. 자기 삶의 가치를 발견했다"고 했다.

장애인들은 직업을 가진 후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기쁨을 누린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다가가는 '함께하는 사회'라기 보다 '함께 일하는 사회'이다.

저자는 취재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 놓아버린다. "장애란 도대체 무엇일까. 여기에 있는 장애인들은 노동의 중요한 담당자들이고, 경영을 책임지는 존재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구별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다."

그는 안정된 의식주 제공, 단지 임금을 받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했던 장애인에 대한 좁은 시야가 확 깨지는 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들은 오늘도 일본이화학공업에 출근한다. 한순간 일하는 기쁨을 온몸으로 나타내고 그것을 직장에 되돌려주고 있다.

'일하는 행복을 실현한 무지개색 분필 회사의 기적'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은 "나는 장애인을 고용했지만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일하는 기쁨을 배웠다"라는 야스히로 회장의 말로 끝을 맺는다. 바로 "일해줘서 고마워요"다.

211쪽, 책이있는풍경, 1만 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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