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유신치하에 저항하다 30대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김해 출신 민주화 운동가 고 김병곤 씨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다. 민주화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 있은 지 수십 년 세월이 흐른 것을 상기하면 참으로 늦은 귀향이다. 우리 사회는 김병곤 씨를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빚이 크다. 그의 귀향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온전하게 지켜 내야 할 책무가 우리 국민에게 있다. 편안한 영면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 김병곤 씨는 1953년 김해 한림면 퇴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한림초등학교, 부산 개성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서울대 상대에 진학한 후 반유신 민주화 학생운동을 했으며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고, 이후 석방된 뒤 1990년 위암으로 별세 했다. 당시 나이 37세였다. 독재 정권이 나라의 보배가 될 수 있는 인재를 죽인 것인데 민주화가 이루어지고도 또다시 수십 년이 흐르고서야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 김병곤 씨의 귀향은 김해지역 민주인사들과 고향 친구들, 문중이 그의 민주화 운동을 기리고자 나서면서 시작되었다. 고 김병곤 추모 기념물은 추진위원회가 모금을 통해 건립하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다. 추모 기념물은 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첫 출발이다. 계획대로 내년 상반기에 기념물이 조성되는 것과 함께 그의 숭고한 희생을 널리 알리고 유신에 온몸으로 저항한 기개가 후세의 사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정 최후 진술에서 그는 사형선고를 한 검찰과 재판장에게 오히려 영광이라고 말했다. 유신치하에서 생명을 잃고 삶의 길을 잃은 민중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젊은 목숨을 바칠 기회를 주니 고맙다고 말한 그의 기개와 희생정신은 민주주의 사표로 길이 남길 소중한 유산이다. 고인의 뒤늦은 귀향이 더 큰 울림이 되도록 김해 주민과 민주인사들뿐 아니라 경남도민 모두가 힘을 보태길 기대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온전하게 지켜내고 국가가 국민을 위압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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