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시장 초기 생기는 수요정체 현상
핵심목표 집중하는 볼링의 킹핀 전략을

2017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새해 들면서 세웠던 목표를 달성한 사람도 있겠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뜻대로 잘 풀리지 않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정 기간 일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저조한 상태가 계속될 때 우리는 '슬럼프(Slump)'에 빠졌다고 말한다. 잘나가던 운동선수,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부진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찬가지로 기술의 개발과 확산에서도 슬럼프가 존재하는데 이를 '캐즘(Chasm)'이라고 한다. 캐즘은 지층의 움직임으로 생겨난 골이 깊고 폭이 넓은 대단절을 의미하는 지질학 용어다. 캐즘은 신기술 혹은 신제품이 시장 초기 진입에서 대중화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단절현상을 빗댄 말이다.

인생사를 유년기·장년기·노년기로 나누듯이, 시장을 초기시장·주류시장·후기시장으로 크게 구분한다. 시장규모가 16% 정도인 초기시장은 새로운 기술에 호의적인 소비자에 의해 구성되는 반면에, 68%의 거대한 주류시장은 새 기술을 수용하는 데 까다로운 실용적이고 보수적 소비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혁신 기술(제품)을 선호하고 애호하는 기술 조기수용자(얼리어답터)에 의해 초기시장에서 잘 팔리던 신제품이 주류시장의 신중한 소비자에게는 호응을 받지 못하고 판매가 저조한 현상이 캐즘이다.

1991년 미국의 컨설턴트 제프리 무어는 신제품의 초기시장과 주류시장 사이에는 캐즘이라는 대단절이 존재하며, 첨단기술이 대중에게 알려지려면 캐즘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캐즘은 사용자들이 처음 접해보는 첨단기술일수록 많이 발생한다. 지금은 대중화된 '스마트폰'도 캐즘 과정을 겪어야 했다. 휴대전화와 PC를 결합한 스마트폰 초기 모델인 PDA폰은 10여 년간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스마트폰 기기와 어플의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스마트폰이 대중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한국능률협회 자료에 의하면 전화는 38년, 케이블 TV는 25년, 전자레인지는 13년, PC는 7년, 김치냉장고는 3년 동안 캐즘에 빠졌었다고 한다.

많은 학자는 캐즘 극복을 위해 볼링의 킹핀 전략을 권고한다. 볼링에서 킹핀(5번 핀)을 맞혀 다른 핀들이 연쇄적으로 넘어지도록 하듯이, 소비자를 세분화하여 공략할 계층을 명확히 하고 이들을 집중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단순히 신제품 하나가 아니라, 관련되는 인프라·서비스·콘텐츠 등의 보완재(기술)를 함께 제시하는 생태계적 환경 구축을 제안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어플, MP3 플레이어의 음원,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기술이 캐즘을 극복한 대표적인 보완재이다. 세 번째는 제품이나 기술의 표준화를 통해 소비자의 편리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기술이라도 시장을 고려하지 않으면 캐즘에 빠져 확산하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다. 캐즘 극복을 위해 기술개발자는 기술 최고주의에서 벗어나, 시장의 특성과 가치를 이해하는 시장 마인드를 가져야 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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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도 슬럼프를 넘어 성공적인 목표달성을 위해, 캐즘 극복전략에서 그 방안에 착안해 볼만하다. 우선 목표 설정에서 핵심목표(킹핀)에 집중하는 것이다. '건강'이라는 큰 목표보다는 몸무게 5kg 줄이기와 같이 핵심목표를 구체화한다. 이러한 목표를 나 혼자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가족·동호회 등을 통해 목표달성 과정을 공유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혼자만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감시와 통제를 빌리는 것이다. 아울러, 기술의 표준화와 같이 바람직한 행동을 습관화하는 데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도, 기술도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 그 슬럼프에서 헤어나려면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뢰의 마인드를 가지고 2018년도를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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