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최남단 밤 드라이브
산 로렌조 해안서 본 밤풍경은 파도 소리와 어울려 선물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두근두근했던 건

환상적인 날씨를 밖에 둘 수만은 없었다. 짐을 얼른 정리해놓고 우리를 멋진 곳으로 데려다줄 귀여운 피아트의 품으로 폴짝 들어갔다. 지금 필요한 행동은 '해안도로를 마음껏 달리는 것'이었다. 어디로 향하든 좋았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는 눈앞의 지중해를 감췄다 보여주기를 반복했다. 풍경에 넋을 잃고 달리다 보니 표지판에 '실라(Scilla·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주, 레조칼라브리아 현에 속한 바닷가 작은 도시)'라는 글씨가 나타났다. 이국적인 풍경을 하고서 '신라'와 묘하게 발음이 비슷한 동네였다.

바위 언덕 꼭대기에 있는 루포 성(Castle Ruffo) 아래로 작고 예쁜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늘어서 있었다. 마을이 생각보다 많이 작았는데 1783년과 1908년에 일어났던 지진으로 이 지역의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그렇지만 현재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겨울 바닷가에는 산책하는 사람 하나 없이 한적했다. 관광객들 대신 주민들이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침도 안 먹고 이탈리아로 넘어온 탓에 배가 고팠지만 셰프(요리사)들이 휴가 기간이라 문을 연 레스토랑을 찾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며칠째 편도선이 부어 있어서 목이 아팠지만 너무 행복해서 고함을 냅다 지르고 말았다.

동화 속 한 장면을 오려낸 듯한 이탈리아 남부 작은 마을 실라.

문을 연 레스토랑을 찾고 찾다가 결국 레조디 칼라브리아(레조칼라브리아 현 중심도시)로 다시 돌아왔다. 때마침 초록색 네온사인이 불빛을 밝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궐 같은 크기에, 바닥에는 양탄자와 레드 카펫, 벽에는 유화가 위엄을 더하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알고 보니 이 주변에서는 가장 비싼 곳이었다.

휑한 내부엔 말 없는 셰프와 사시 눈을 한 상냥한 아주머니가 있었고, 이날 손님은 '어쩌면' 하고, 예상한 대로 우리밖에 없었다. 무척 넓었지만 우리가 식사하는 곳, 주방, 그리고 입구 쪽의 불만 켜놓았다. 극강의 파리 강추위를 경험했던 우리는 이탈리아로 오고나서는 외투를 벗고다녀도 괜찮았지만, 히터가 고장 나버린 레스토랑에 앉아 있으니 곧 싸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22년 된 식당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그 추위에 한몫을 더했다. 언니랑 나는 묘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굉장한 무게의 침묵을 함께 삼키자니 소화가 안 될 것 같아 내 휴대전화로 작게 음악을 틀고서 식사를 즐겼다. 음식은 상상 이상으로 양이 많았고, 맛있었다! 말 없는 셰프 아저씨는 우리가 갈 때까지 무서운 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숙소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는 같은 곳을 다섯 번이나 돌아서야 주차에 성공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낄낄거리는 것 말고는 이 모든 상황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방에 들어가 주변 정보를 찾아봤는데, 조금만 더 내륙으로 들어가면 '고스트 빌리지'가 있단다. 1960년대부터 금지된 구역으로, 현재 팔십 세 할머니가 혼자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곳 어느 고속도로가 너무너무 형편없어서 유럽에서 고속도로로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글도 찾아냈다. 이런데도 건설하는 데 55년이나 걸려서 총리가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고! 여러 기사를 읽는 내내 우리는 또다시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남부 이탈리아, 이렇게까지 매력이 흘러 넘치는 곳일 줄이야.

밤 9시. 이렇게 밤을 마무리하기에는 무척이나 아쉬웠고, 아까 그런 레스토랑의 분위기라면 술을 마시러 갔다가 심장이 얼어붙을 판이었다. 옆에서 지도를 살펴보던 언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야간 드라이브 갈까? 이탈리아의 가장 남쪽으로."

역시, 탐험도 취향이 맞는 사람이랑 해야 좋다니까! 우리는 숙소로부터 36㎞ 정도 떨어져 있는 이탈리아 최남단 산 로렌조(San Lorenzo)의 마리나(marina·해안)로 향했다. 레조디 칼라브리아를 벗어나니 가로등이 없는 길이 절반이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조심스레 항구에 도착했다. 파도가 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저 멀리 가로등 하나 말고는 불빛이 아예 없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마피아의 습격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현듯 차 문을 열고 나가 헤드라이트를 꺼달라고 했다. 언니가 미쳤다고 했지만 내가 보지 못하는 풍경을 나의 카메라가 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이탈리아 최남단 해변도시 산 로렌조의 별빛 가득한 밤하늘. /박채린

그러자 아,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별들이 차츰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순간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늘 도시에 살았기에 이토록 수많은 별을 눈동자에 담아본 적이 없었다. 내가 인식할 수 없는 빛까지 끌어다 모은 카메라 덕분에 이곳의 환상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아주 진한 어둠이 두려우면서도 이 밤이 가져다주는 선물 같은 순간에 온 마음이 설렜다. 파도 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어쩌면 진짜 근처에 마피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진을 찍던 곳 옆에는 아주 낡은 자동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이곳에는 폐기물과 불순 물질의 하역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있었다. 언니도 밖으로 나왔다. 오로지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고 또 보았다. 바깥 온도는 8도에서 10도 사이, 단단히 챙겨 입고 왔으니 밤바람에도 기분 좋게 나와 있을 수 있었다. 비밀스러운 감상을 이어가다가 더 오래 있다가는 누군가로부터 습격을 당할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잠의 요정이 산 로렌조 마리나의 별 가루를 두 눈 위에다 살포시 뿌려주었다. <끝> /시민기자 박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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