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 노동력 거저 얻겠다는 인식
몸에 밴 불공정 악행 걷는 게 중요

최근 방송사한테서 일종의 '갑질'을 겪었다. 10월 중 KBS 진주방송국 라디오 아침 프로그램에 10분 남짓 인터뷰가 나간 적이 있다. 그러나 담당 리포터는 내 은행 계좌번호를 묻지 않았다. 사전에 그 리포터는 보수가 없다는 말을 전혀 꺼내지 않았고 심약한 나는 입이 간지러웠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도 괘씸한 생각이 사라지지 않아 얼마 전에야 리포터에게 물어보니, 1회성 출연은 보수 책정이 안 돼 있다고 했다. 다른 출연자들은 자기 단체 홍보를 위해 그냥 해준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출연료를 요구한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그제야 이 방송국이 예전에도 내게 그 짓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대가가 따르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무보수 재능기부인 줄 알았다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속상해 봤자 헛일이었다.

남의 노동력을 거저 얻겠다는 자들의 사고도 문제지만, 사전에 보수 문제를 거론도 하지 않은 것 하며, 그것을 당연하게까지 말하는 데서는 오만함까지 느껴졌다. 그 인터뷰에서 KBS진주가 한 일은 신문 기사 뒤적여 성의없는 질문 몇 개 만들어 보내준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방송에 나오게 했으니 너도 좋은 것 아니냐는 생각,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은 출연자를 이렇게 알뜰하게 챙기셨다.

뒷북을 잘 치는 내가 국민신문고에 질의를 보냈더니, 접수된 민원을 담당 정부부처로 이관하는 일을 하는 국민권익위원회는 내 민원을 고용노동부로 이첩했고, 고용노동부에서는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되어 있지 않다고 방송통신위원회로 보냈고, 거기서도 자기 소관 아니라며 마지막으로 대한법률구조공단으로 넘어간 일은 우울한 후일담이다. 결론은 판사한테 물어봐야 한다는 것. 법률구조공단의 담당자는 비슷한 선례도 없다고 하며 난감해했다. 또 소송해도 승소 가능성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소송하면 인지대 비용만 7만 원가량 든다고 했다.

그동안의 라디오 인터뷰 출연료를 헤아려보니 보통 3만∼5만 원 선이었다. 이런 사소한 문제 하나도 현행 제도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고 보니 내가 보수를 받고 끝낼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지만, 내 불이익을 면하기 위함이 아니라 방송사의 나쁜 관행이나 갑질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을 해볼까 한동안 고뇌했다.

주위에 물어보니 무보수 인터뷰는 드문 일도 아니었다. 또 헤아려보니 그동안 언론사의 갑질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었다. 찻집에서 한 시간 넘게 인터뷰에 응해 주었지만 차 한 잔 얻어먹은 게 전부인 경우도 많았다. 그때, 취재를 도와주셨으니 찻값은 자신이 내겠다고 한 어떤 기자는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육성 인터뷰뿐만이 아니었다. 기자들로부터 왕왕 취재 요청을 받고 도움을 주었음에도 나한테 돌아온 대가는 전혀 없었다. 내 논문이나 자료도 아주 쉽게 요구하는 그들에게 목울대까지 올라온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언론사 요청으로 원고 100매가 넘는 글을 쓴 적도 있지만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가진 자원과 에너지를 남의 기사 한 꼭지 만드는 데 고스란히 바친 셈이었다. KBS진주처럼 출연자에게도 보수를 주지 않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마당에 신문 기사나 방송 프로그램을 도운 취재원에게 대가가 지급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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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론사 그대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관행은 남의 귀한 자원을 거저먹는 부당하고 불공정한 악행일 뿐이다. 자신의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바른 데 쓸 생각은 않고 약자에게 갑질 하는 데나 쓰는 그대들의 행동은 서캐처럼 쌓인 언론사 적폐 중 하나일 따름이다. 정부가 바뀐 이후 방송 정상화가 황급한 화두가 되어 있다. 그러나 사장 바꾸고 억울하게 해고된 구성원을 복직시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몸에 배어 자신들도 깨닫지 못하는 언론사 구성원들의 체질을 바꾸는 것도 그 못지않게 크다. 방송사에서 가장 힘없다는 리포터까지 출연자나 취재원에 대한 우월의식에 젖어있는 지경이면 그 어떤 개혁보다 더 힘든 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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