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명 예술가 백자 활용한 창작 실험 조명

도자에 대한 편견이 산산조각난다. 뽀얀 항아리가 회화처럼 액자에 걸렸고 자기가 마치 종이처럼 접어져 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돔하우스에서 하반기 기획전 '경덕진-백자에 탐닉하다'가 한창이다. 중국 장시성 북동지방에 있는 경덕진(징더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 아홉 명이 선보인 도자가 예사롭지 않다.

이승희, 장밍(중국), 진젠화(중국), 데렉 오(미국), 왕지안(중국), 다케시 야스다(일본), 펠리시티 아리프(영국), 리사이클드 차이나(토마스 슈미트(미국)+제프리 밀러(미국))가 참여해 현대 도예가들의 오늘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200점이 넘는 작품은 중국 전통 도자의 수도라고 불리는 경덕진에 살거나 자주 찾으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 9명의 현재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돔하우스에서 하반기 기획전 '경덕진-백자에 탐닉하다'가 한창이다. 사진은 진젠화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도자 작품. /이미지 기자

돔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대나무가 빼곡하다. 백자로 쌓아올린 붉고 검은 250그루 대나무다. 마디는 하나하나 올린 백자로 나뉜다. 이승희 작가는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저항의 상징인 대나무가 초록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백자가 구름이 됐다. 전시장 바닥에 깔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다. 장밍 작가는 천여 년에 걸쳐 계승된 중국 수묵산수화에 이용된 재료나 화법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그래서 백자 표면에 각을 주어 수묵의 농담을 조절하듯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밀도 있게 겹쳐 입체감을 만든다. 작가는 가벼운 먹, 무거운 먹 등을 칭하는 수묵화 기법을 조형물의 크기, 점, 채색으로 바꿔놓았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돔하우스에서 하반기 기획전 '경덕진-백자에 탐닉하다'가 한창이다. 사진은 이승희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도자 작품. /이미지 기자

또 다른 전시실은 종이처럼 살짝 접힌 도자가 하늘에 내걸렸다. 이제 막 피어난 꽃잎이 흩어진 것 같다. 섬세하게 점토를 다듬는 진젠화 작가만의 기법이 돋보인다.

중국 옛 도자를 수집하고 연구한 데렉 오 작가는 장식을 중시한 만큼 표면이 다양한 도자를 내놓았다.

왕지안 작가는 1700년이 넘은 경덕진의 도자 역사를 보여준다. 차를 마시고 꽃을 꽂아둔 일상과 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찻잔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작가는 서재, 꽃꽂이, 그림, 향, 차 등 이 모두가 함께 작품을 만든다고 믿는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돔하우스에서 하반기 기획전 '경덕진-백자에 탐닉하다'가 한창이다. 사진은 다케시 야스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도자 작품. /이미지 기자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팀으로 참여한 리사이클드 차이나는 폐기된 도자와 알루미늄이 서로 휘감았을 때를 상상한다. 도자기 사이에 뜨겁게 녹인 알루미늄을 주입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회화처럼 벽에 내걸려 색다르다.

다케시 야스다 작가는 흙의 특성에 집중한다. 금 유약을 바른 도자는 전시장을 빛낸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돔하우스에서 하반기 기획전 '경덕진-백자에 탐닉하다'가 한창이다. 사진은 장밍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도자 작품. /이미지 기자

이번 전시의 마지막은 크기에 압도된다. 펠리시티 아리프 작가는 도자에 정물화를 그려넣는다. 가방, 컵, 주전자처럼 흔한 물건이 2m 가까이 되는 도자기에 빼곡하다. 전통적인 소재에 현대적인 문맥을 부여한다. 어색함보다 신선함이 앞선다.

이번 전시는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작가 인터뷰와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흙을 대할 때 가장 평온하면서도 편안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진젠화 작가의 말처럼 흙이 빚어낸 작품 하나하나는 탐닉 끝에 긴 울림을 준다.

전시는 내년 2월 11일까지. 입장료 2000원(성인). 문의 055-340-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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