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속'일하고 싶다] (1) 고용안정, 큰 꿈인가요?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 자리 뺏기 아냐…무기계약만 돼도 갑질 사라질 것"

경남도교육청은 오는 19일 2차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연다. 교육부가 제시한 '기간제 교원 및 학교 강사(7개 직종) 공동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측과 노측이 머리를 맞대 어느 직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 심의 대상 직종은 52개, 총 6132명이다. 아이들 건강을 책임지는 영양사·조리사, 학교 청결을 맡은 청소원 등 이들은 지속적으로 학교 현장의 부당함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이들은 단순히 정규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 논의도 쟁점은 무기계약직 전환 여부다. 내일 출근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의 당당한 일원을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를 네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사용자에게 재계약은 큰 무기다. 피고용자에게 재계약은 족쇄다. 계약직 노동자는 부당업무 지시에도, 무임금 노동 지시에도 "내년 계약…"이라는 말만 들으면 'NO'를 외쳐야 할 입에서 'YES'가 나온다. '내년 계약'을 위해 운동부 지도자는 화장실 휴지를 교체하고, 스포츠 강사는 학기 중에 아파도 휴가를 쓰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바람은 '내년 계약' 족쇄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정규직 전환이 아니다. 계약 기간이 없는 무기계약직 전환 논의다. 계약 기간을 정하지 않는 점은 정규직과 같지만 본질은 계약직에 해당한다는 모순이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남지부가 12일 오전 경남도교육청 브리핑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정규직, 비정규직을 나누는 요소는 고용 보장과 처우 수준이다. 무기계약직이 등장한 것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법 등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2007년 무렵이다. 법으로 계약직 등 기간제 근로자와 파견 근로자의 근무 기간이 2년을 초과하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기계약직은 고용은 보장하되 급여 등 처우는 정규직과 다르다. 주로 사측은 고용 보장이 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고, 노측은 처우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반쪽짜리'라는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느냐' 싶은 명칭 차이는 사회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정규직(또는 희망자)이 된 자리를 이참에 비정규직이 쉽게 꿰차려는 의도로 읽혀 서로 논쟁이 뜨겁다.

황경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장은 "정규직 전환 논쟁 이후 교사, 임용고시생과 갈등 양상을 보인 것은 맞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명칭 자체가 정규직과 동급이 되는 것으로 비친다"며 "그들의 자리를 뺏으려는 의도도 아니고 건강한 경쟁을 회피할 의도도 없다. 매년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무기계약직으로만 전환돼도 학내 갑질과 차별을 당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논쟁이 예상되는 학교강사 7개 직종 중 유치원 돌봄교실 강사와 유치원 방과 후 과정 강사를 제외한 직종을 무기계약직 전환에서 제외했다. 약속과 요구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놓고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9월 교육부 심의위원회 구성을 비판했다. 교육부 4명, 교총 1명, 학부모 1명, 외부전문가 1명, 민주노총 1명, 한국노총 1명이 참여한 심의위는 사측이 절반을 넘어서 정책 취지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도교육청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 구성도 마찬가지다. 교육청 심의위원은 위원장인 김원찬 부교육감을 비롯해 10명이다. 위원장을 비롯해 교육장·교장·총무과장 등 교육청 소속 4명, 고용노동분야 전문가 2명, 경남교원단체총연합회 1명, 전교조 경남지부 1명, 학부모 1명, 황경순 학비노조 경남지부장으로 구성됐다.

김유미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남지부장은 “학교 비정규직 실태를 잘 알고 대변할 수 있는 노동조합 인사는 1명뿐이고, 나머지는 교육청에서 의논 없이 구성했다”며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만큼 절대적으로 노동계가 불리한 구성”이라고 주장했다.

공무직노조는 12일 도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사 의견이 동수로 반영될 수 있도록 심의위를 다시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또 전환대상 당사자와 노동조합 참여 보장을 촉구했다.

교육청은 “교육부는 심의위 구성에서 절반을 외부인사로 포함할 것을 권고해 이를 준수했다. 3개 학교비정규직 노조가 연대해 하나의 조직을 만들면서 노동계 1명이 참석하게 됐다. 연대 상황을 이야기하며 2명 이상을 심의위에 포함해달라는 요구 등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2차 심의위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재구성은 어렵다는 견해다.

교육청은 학생 수 감소와 인건비 증가(매년 5~6% 인상)로 직접교육비는 줄고 간접교육비가 느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덧붙였다. 교육청은 교육부 가이드라인 준수를 강조하고 있어 교육부 심의위 결정을 벗어난 결정을 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년 계약”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자 입에서 오르내리는 연말, 학교 비정규직의 겨울은 더 매섭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