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영록서점의 비보에 이어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이 위기라는 소식이 들린다. 전자는 주인을 잃었고, 후자는 손님을 잃었다.

스페인 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 쓴 <바람의 그림자>라는 책이 있다. 1945년 바르셀로나가 배경이고, 한 권의 책이 이야기의 중심 소재다.

주인공 다니엘은 아버지를 따라 '잊혀진 책들의 묘지'를 찾는다. 책으로 가득한 이곳에는 규칙이 있다. 여기서 본 것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과 책 한 권을 골라 양자로 삼아야 한다는 것.

다니엘은 수수께끼 작가 훌리안 카락스가 쓴 <바람의 그림자>를 선택한다. 다니엘은 책에 흠뻑 빠져서는 급기야 책을 쓴 훌리안 카락스의 흔적을 쫓는다. 누군가 자신의 뒤를 밟는지도 모른 채.

소설은 흥미롭고 신비한 분위기를 안고 끝까지 힘있게 달린다. 2001년 출간되어 150주 이상 베스트셀러에 오른 사실이 증명한다.

비평가 사회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인 열풍이 독일과 프랑스를 휩쓸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평가나 입지가 꽤 탄탄한 책이었다.

대학생 때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책의 줄거리를 듣고 몹시 읽고 싶었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절판인 상황이었다(지금은 다시 찍어내 쉽게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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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책방골목을 샅샅이 뒤져 책을 찾았고, 기쁜 마음으로 단숨에 읽었다. 실제 책을 찾는 과정이 소설의 내용과 비슷하게 맞물려 더욱 값진 순간이었다.

인터넷이나 대형 중고 서점에서 헌책을 쉽게 구하는 요즘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내가 보수동에서 찾은 값진 경험을 팔지는 않는다. 사라지는 것이 더 안타까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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