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좋지만 구질구질했던 가게 내부시설
인테리어 후 상점주에 대한 인식도 변화

고등학교의 한쪽은 막혀있고 건너편에 슈퍼가 있어서 장사가 잘될만한 위치다. 버스정류장까지 있어서 학생들이 바글바글하다. 주변에 가정집이 없다는 게 단점인데 학생들 상대로 잘만하면 나름대로 괜찮을 것도 같다. 할아버지가 조금만 생각을 바꿔서 인테리어에 돈을 투자했으면 좋겠는데. 학생들이 까불고 가끔 껌 같은 거 훔쳐가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매일 욕을 입에 달고 산다. 의심이 가더라도 웃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정 의심스러우면 CCTV를 달면 되는데.

슈퍼에 들어가면 낡은 카운터에 20년 전에 내가 사탕을 팔 요량으로 갖다 드린 아크릴 진열대에 소시지, 오예스를 올려놓고 팔고 있다. 가게의 절반은 장사하면서 벽을 허문 것인지 중간에 계단이 있다. 좁은 공간인데 그나마 한 공간이라는 통일성을 주지 않는다. 구석구석 먼지가 쌓여 있고, 오래된 선반에 올려놓은 과자들까지 오래된 과자처럼 보인다. 껌 진열대도 너무 오래돼서 페인트가 벗겨진 구석구석 녹이 슬어있다. 껌이라도 수북이 쌓아놓으면 낡은 진열대가 감춰질 것 같은데 학생들이 훔쳐갈까 싶어서 껌도 개수를 세서 몇 개씩만 찰랑찰랑하게 담아놓는다. 여분의 껌은 선반에 맞춤하게 들어갈 만한 종이박스에 담아놓는다. 종이박스도 종종 바꿔줘야 하는데 여름 전에 해진 박스를 박스테이프로 갈무리해놓고 해를 넘겨서 사용한다.

가게 뒤쪽에 벽돌로 쌓아올린 화장실은 서부영화에 나오는 술집의 문처럼 잠금장치도 없이 마음대로 열리고 닫힌다. 틈이 넓어진 중간문으로 쥐들이 종종 오간다. 화장실과 가게 사이 중간공간은 예전에 방이었던 거 같은데 방을 음료수 창고로 쓰고 있다. 중간중간 10년 전이든, 20년 전이든 인테리어를 할만한 기회가 있었을 거 같은데 돈 들어가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돈을 아끼느라 이곳에서 돈을 쓰려는 사람들 마음도 떠나보낸 거 같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한 동아슈퍼를 보게 된다. 가게 중간에 어설프게 있던 계단이 없어지고, 낡은 벽들이며 선반이 사라지고 내장형 냉장고에 가게를 환하게 비추는 조명까지. 그리고 가게를 가득 채운 학생들이 있다. 안 되는 건 장사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낡은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공간인데 이렇게까지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나, 과자를 사는 학생들이나 껌을 훔쳐갈까 싶어서 욕하지도 않고 학생들도 할아버지의 사나운 눈초리 없이 얼마든지 원하는 것을 고르고 있다. 간판이 동아슈퍼에서 ○○○편의점으로 바꿔어 있다.

동아슈퍼가 그렇지만 해피마트, 화랑슈퍼, 서울슈퍼, 시민슈퍼가 그랬다. 진작에 인테리어 하시지 그랬냐고 말하고 싶은데 이제는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실내 인테리어만 하면 되는데 그 인테리어하면서 사람까지 바꾼다. 그것이 인테리어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기업이 한다는 인테리어에서 사람도 교체해야 할 품목 중의 하나인 모양이다. 똑같이 평당 얼마로 계산하지는 않지만 사람 교체비용도 가격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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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동안에는 살아도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정말 살아있는 동안에는 고쳐 쓰고, 아껴써야 하는 게 사람이 아닌가 싶은데 슈퍼 인테리어에서는 사람이 제일 먼저 교체되는 것 같다. 사람이 교체되지 않으면 공사를 시작하지도 않는다. 10년 이상 내가 슈퍼주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슈퍼주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건물주와 대기업이 슈퍼 인테리어를 합의하는 중에 내가 슈퍼주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교체되어간다. 이제 오지 말라는 말과 그간에 슈퍼주인이 아닌데 주인 행세한 민망함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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