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발의제도는 제정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실제 행사된 예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일례로 홍준표 전 지사를 대상으로 청구된 주민소환운동이 상기될 터이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그만큼 과정이 까다롭고 정치적 역풍이 거세 생업에 바쁘고 상대적으로 힘이 분산된 주민들로서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최근 하동군민이 도전장을 내밀어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법이 허락한 하한선을 크게 웃도는 주민 다수가 친환경 급식조례 제정을 위한 청원준비 작업을 끝내고 조만간 그 명단을 행정청에 제출키로 한 것이다. 주민발의에 걸리는 7단계 절차 중 5단계를 완료함으로써 이제는 중단할 수 없는 현안이 됐다. 나머지 절차는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는 한 군 당국이 수리해야 하고 60일 이내에 군의회에 송부돼 가부를 물어야 한다.

주민들이 직접참여권을 행사할 수 있게 규정한 주민발의제는 그동안 경남에서도 수차례 주민소환 주민투표 주민소송을 통해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주민들이 조례를 입안해달라며 실력행사에 나선 일은 흔치않다. 지금까지 의회의 전유물로서 오직 의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지역공동체가 원하는 것은 주민들이 자력으로 직접 쟁취할 수밖에 없다는 각성이 돋보이는 이유다. 하동군민들이 제안한 조례의 대상이 어린 학생들의 건강을 지켜줘야 마땅한 학교 무상급식과 관련한 것으로 거기에 소요되는 식품재료를 친환경 농수산물과 축산물로 쓰자는 취지에 따라 지역산업을 육성하자는 주장도 담은 만큼 이를 반대하거나 거부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관건은 군의회가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달렸다. 의원들이 자신의 권한을 침해당했다는 반발심이 있다면 사전 입맞춤으로 부결 카드를 꺼내 들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의회가 민의를 대변하는 순기능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비난과 맞닥뜨릴 수 있다. 물론 대다수 의원이 그런 좁은 생각에 갇혀 있지는 않을 것이란 추측이 지배적이다. 의회가 미처 챙기지 못한 일을 주민들이 대신 해준다는 긍정적 사고방식 아래 새로운 참여문화를 만들 수만 있다면 자치력이 한 계단 오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