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언론' 주주모집 때의 당당함처럼
'부끄럼없는 언론인' 자신감에서 비롯

평소 저는 영업 체질이 못 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개뿔도 없는 게 자존심은 높아 어딜 가서 아쉬운 소리를 못했습니다. 과거에 재직했던 한 일간지에서 가장 괴로웠던 일은 취재원을 상대로 '연감'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신문사는 경남도청과 각 시·군에서 받은 자료를 짜깁기하여 책을 만들고, 높은 가격을 매겨 팔았습니다. 판매에는 당연히 기자들이 동원됐죠. 당시 저는 판매실적이 가장 저조한 기자였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영업에 나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1998~1999년 도민주주신문 경남도민일보를 창간할 때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신문을 만들겠다'며 스물한 가지 약속을 만들었고, 이를 앞세워 도민주주를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과 단체의 목록을 만들고, 경남 전역을 누비며 하루 수십 명을 만났습니다. 결코 저자세로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당당히 '경남을 바꿀 개혁언론' 창간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놀랐습니다. 언제 나에게 이런 뻔뻔함이 있었지? 하지만 그건 뻔뻔함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그런 신문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자부심이었습니다. 그 결과 저를 만나 주주가 되신 분만 500여 명, 주식대금으로는 5000만 원이 넘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때 저를 통해 기꺼이 주주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렇게 경남도민일보가 창간된 후 2000년과 2001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2년 연속 저를 찾아와 함께 일하자고 한 일이 있습니다. 그에겐 미안했지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사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가 모집한 주주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놓고 제가 떠난다면 그야말로 '먹튀 사기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났습니다. 지령 5000호를 앞두고 '독자 1만 원 응원광고'를 모집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소수 지인들에게 아래와 같은 내용이 포함된 문자를 보냈습니다.

"송구하지만 광고에 참여해주실 수 있을는지요.(중략) 안내 차원에서 보내는 메시지이므로 부담 갖진 마시길… ^^;"

그랬더니 문자를 받은 한 지인이 충고하더군요. 왜 이리 저자세냐고요. 앞으로도 떳떳한 신문 만들 자신 없냐고 말입니다. 그럴 자신이 있다면 당당하게 응원을 요청하라고! 순간 띵~하더군요. 18년 전 그 패기는 어디 가고 이렇게 자신이 없어졌나? 그래서 '송구하지만' '부담 갖진 마시길' 등 문구는 뺐습니다. 대신 '도민일보 팍팍 밀어주기'로 고쳐 문자를 발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그 문자 하나만 보고 300명이 넘는 분들이 응원을 보내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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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저희가 대놓고 이렇게 응원을 요청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우리 스스로를 옭아매기 위한 일종의 의식(儀式)과도 같은 것입니다. 앞으로도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언론인이 되겠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결코 당당하게 응원 요청을 할 수 없습니다.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는 독자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경험해본 사람은 절대 허튼짓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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