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따라 춤추는 억새 뒤로 철새 무리 지나고
고니·노랑부리저어새…겨울철 '귀한 손님' 낙원
창원 도심에서도 가까워 운치 즐기며 걷기에 그만

가끔 죄다 지긋해서 어디 조용한 곳 없나, 기웃한다. 열에 아홉은 어딜 가도 사람, 또 사람이어서 문밖으로 나가길 포기한다.

교외로 나가려면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데, 도로에서 쌓을 분노를 생각하면 엉덩이 들기가 무섭다. 창원에 산다면 좋은 선택지가 있다. 동읍 주남저수지다.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다, 자주 마을버스가 다녀 운전을 하지 않아도 좋다. 조용하고 운치가 있는 데다, 걷기에 또 그만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차례로 산남·주남·동판이다. 셋을 하나로 묶어 주남저수지라 부른다.

널리 알려지기에는 주남이지만, 좀 안다는 사람은 동판을 높게 부른다. 이른 아침 동판 물가를 따라 걷기를 으뜸으로 꼽는다.

이즈음 창원 주남저수지 제방을 따라 걸으면 억새를 마음껏 볼 수 있다. /최환석 기자

시내에서 2번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가 주남삼거리 정류장에서 내린다. 두 정거장 더 가면 목적지 바로 앞이지만, 이른 걸음을 걷는다.

총면적 6.02㎢, 주남저수지는 낙동강과 지류인 주천강이 넘쳐 흐른 흔적이다.

큰 강 바닥이 퇴적으로 점점 높아지면 지류의 물은 자연스레 호소로 변한다. 배후습지성 호소인데, 주남저수지가 그렇다.

지금 주남저수지는 인위성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1922년부터 1924년까지다. 이때 제방을 쌓았다.

홍수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물이 차고 가장 나중에 물이 빠지는 곳은 저수지화했다. 나머지는 곡창지대가 됐다. 제방에 오르면 서쪽은 저수지, 동쪽은 너른 들인 까닭이다.

매년 10월께 겨울 철새가 무리를 지어 주남을 찾는다. 이들은 이듬해 3월까지 터를 잡고 월동을 한다. 11월 현재 1만 4000여 마리, 74종의 겨울 철새가 있다.

주남은 늪인지, 호수인지 가늠하기 모호한 구석이 있다. 물 위에 보이는 저것이 새인지, 식물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숨은 그림을 찾듯 조용히 저수지를 응시하자 조금씩 움직임이 드러난다. 주남이 즐거운 까닭 하나다.

숨은 그림을 찾듯 저수지를 응시하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철새들. /최환석 기자

그렇게 찾은 새들은 죄다 귀하다. 고니,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청둥오리, 가창오리….

천연기념물, 개체 보존 종이라 하여 귀한 대접 받는 새들인데 주남에서는 흔히 보여 꼭 친구처럼 정겹다.

제방을 따라 고개를 치켜든 억새가 장관이다. 바람 따라 춤을 추는 억새의 몸짓 뒤로 철새 떼가 날개 춤을 춘다.

가끔 더 가까이 철새를 보거나 사진으로 남기려고 억새를 밟고 안으로 들어가는 치가 있다. 밟힌 억새는 허리가 꺾여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데, 볼썽사나운 인간은 죄책감도 없이 고개가 빳빳하다.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를 망원경 렌즈에 가까이 붙여 찍은 주남저수지 겨울 철새 모습. /최환석 기자

철새를 자세히 보려면 제방 곳곳에 마련한 망원경을 쓰자. 뚜렷한 철새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때도 망원경을 적극 활용하면 된다.

카메라 렌즈를 망원경 렌즈 가까이 붙여 조절만 잘하면 쉽게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휴대전화 카메라도 충분하다.

철새관측소에서 방향을 틀어 주천강을 따라 600m가량을 걷자 늠름한 돌다리 하나가 보인다.

주천강 사이에 놓여 주남새(사이)다리라 불리기도 하는 주남돌다리는 경남문화재자료 제225호다. 다리는 동읍 판신마을과 대산면 고등포마을을 잇는다.

동읍 판신마을과 대산면 고등포마을을 잇는 주남돌다리. /최환석 기자

얼핏 엉성해도 널찍한 교면석이 튼튼한 인상이다. 1967년 억수같이 내린 비로 물이 불어 한 번 무너졌다. 중간 교면석 하나와 양쪽 교각석만 남은 다리를 복원한 때가 지난 1996년이다.

볼거리 많은 주남이지만, 사실 귀한 것은 따로 있다. 주남으로 오는 마을버스 안에서 만난 한 노인은 마산 어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에 가는 길이랬다.

"할배 죽고 나서 무거운 짐 끌고 버스 타고 다닐 때 가끔 서러워. 어둑한 밤에 혼자 있을 때 꼭 외롭고, 죽은 할배가 그립더라고."

주남삼거리 정류장 하나 앞인 다호 정류장에서 노인이 내릴 때, 무거운 짐을 대신 버스에서 내려주었다. 연방 고맙다며, 내일 열릴 마을 행사에 꼭 오라며, 행사장에서 만나면 집으로 가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노인. 그래, 주남에는 또한 귀한 인심이 있다.

이날 걸은 거리 4.1㎞. 5985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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