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5000호, 그간의 발자취
6200여 명 도민주 신문으로 1999년 5월 11일 첫 발행
침묵의 카르텔 깨기에 앞장
2013년 밀양송전탑 보도로 권위있는 언론상 휩쓸어
온라인 대응도 발빨라 블로그·SNS 독자층 확대

지령(紙齡)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는 '종이 신문의 나이'를 뜻한다. '몇 호'식으로 표현한다. 창간호를 1호로 해서 발행일마다 1호씩 늘어난다. 5000호라 하면 5000일에 걸쳐 종이 신문을 냈다는 뜻이다. 지령이 표시하는 숫자 자체가 그대로 종이 신문의 역사라고 하겠다. 길지 않은 역사지만, 지역 신문사로서 이뤄낸 성과가 적지 않다. 시대 흐름에 맞춘 큰 지면 변화도 몇 번 있었다. 지령 5000호를 맞아 지난 세월 경남도민일보가 묵묵한 걸음으로 찍어낸 그 발자국을 뒤돌아 본다.

◇시대 따라 변화한 지면

경남도민일보 창간호, 즉 지령 1호는 1999년 5월 11일 자다. 당시 16면짜리 신문이었는데, 창간호이기에 24면으로 발행했다. 김대중 대통령 친필 사인이 들어간 축하 메시지와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축사가 눈에 띈다. 지금은 사회 곳곳에서 중견이 됐을, 당시 신입 기자의 풋풋한 각오도 담겨 있다.

창간호 1면 상단, 경남이란 글자에 포인트를 준 제호는 지금 보면 '촌티'가 많이 난다. 현재와 같은 제호 글씨체와 '펜을 잡은 손 모양' 빨간 심벌마크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2월 21일자부터다. 당시 창신대 조형미술과 디자인팀이 제작한 것이다.

2002년 10월 12일 토요일 자부터는 주말 신문을 타블로이드판 섹션 <위클리 경남>(32면)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주5일제라는 시대 추세에 맞춰 레저, 휴식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주5일 근무제가 확산하면서 토요일판이던 위클리 경남은 2006년 사라졌다. 그리고 2009년 2월부터는 경제위기와 효용성 등을 이유로 토요일 자 신문 발행을 아예 중단했다. 2006년 12월 18일 자부터 제호 아래 빨간 선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또 홈페이지 주소(idomin.com)와 약한 자의 힘이란 사시가 새로 첨가됐다. 지금은 홈페이지 주소가 페이스북(idomin), 트위터(@gndomin) 주소와 함께 1면 오른쪽 인덱스 아래 들어가 있다.

호외(號外)는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지령을 붙이지 않고 임시로 발행하는 신문을 말한다. 경남도민일보는 지금까지 딱 한 번 호외를 발행했는데,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일(4면)이었다. 이외 2003년 9월 13일 추석 연휴, 당시 많은 인명을 앗아간 태풍 매미 피해 소식을 전하는 12면짜리 신문을 긴급 발행했고, 2013년 10월 15일에는 밀양 송전탑 투쟁을 계기로 에너지정책의 본질까지 담아낸 밀양 송전탑 특별판을 만들기도 했다.

2013년 10월 15일 발행한 밀양송전탑 특별판.

◇현장 중심취재 각종 수상 성과로

지난 2013년은 경남도민일보에 특별한 한 해였다. 이 해에만 제12회 송건호언론상, 제16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전국언론노조 제23회 민주언론상 특별상 등 권위 있는 언론상 세 개를 받았기 때문이다.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언론노조 민주언론상은 이 해 치열했던 밀양송전탑 투쟁 연속 보도를 계기로 받은 것이었다. 언론노조는 경남도민일보 밀양송전탑 보도가 현장 취재로 주민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고 평했다. 세계적인 인권운동 단체 국제앰네스티는 경남도민일보 밀양송전탑 특별판 기사가 지역사회 온갖 위협을 물리치고 과감하게 보도한 점을 주목했다. 밀양송전탑 보도는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제3회 인권 보도상 수상까지 이어졌다.

2013년 경남도민일보는 제12회 송건호언론상·제16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전국언론노조 제23회 민주언론상 특별상을 한꺼번에 받았다.

송건호언론상은 언론 정도를 걷거나 언론 민주화에 이바지한 언론사나 언론인에게 주는 상이다. 이 상을 주관하는 청암언론문화재단은 제12회 수상자로 경남도민일보를 선정하며 소유 구조 민주성, 편집권 독립, 수평적 의사소통, 높은 언론윤리를 이유로 들었다. 한꺼번에 쏟아진 언론상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신문사로서는 큰 성과다. 이는 1999년 창간 때부터 지켜온 민주적 의사소통, 편집권 독립이라는 원칙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언론 민주화를 향해 뚜벅뚜벅

경남도민일보는 등장부터 지역 사회 모난 돌이었다. 경남지역 계도지 폐지 운동을 주도하고, 폐쇄적인 기자실을 개방적인 브리핑룸 체제로 바꾸는 데 앞장섰다. 2003년 편집권 독립을 명시한 '편집규약'을 전국 언론 최초로 제정한 일은 경남도민일보가 선도하는 언론 개혁의 중요한 과정이었다.

또 창간 때부터 기자 사회 관행이던 촌지 문화를 거부하고, 어쩔 수 없이 받은 것은 한데 모아 이웃돕기로 보냈다. 이런 전통은 2015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기 전까지 경남도민일보 내부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었다. 외부에서 수많은 비아냥과 반발에 부딪혔고, 내부로도 끊임없는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때로는 비틀거렸지만 걸음은 묵묵했다. 그 결과는 지난 2005년 '지역신문발전 지원특별법'에 따라 시행한 전국지역신문평가에서 최우수 A등급을 받고 우선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일로 나타났다. 신문 역사상 최초로 이뤄진 지역신문 평가이기에 더욱 뜻깊은 결과였다. 경남도민일보는 이때 이후 올해까지 13년간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 지원 대상사로 계속해 선정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는 딱 한 번 호외를 발행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일이었다.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

지역 언론 민주화 노력과 함께 신생 언론으로서 도전도 멈추지 않았다. 경남도민일보는 창간 첫해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벤처기업 인정을 받았다. 이때부터 도전은 경남도민일보의 또 다른 명함이 됐다.

6200여 명이 참여한 도민주를 기반으로 창간한 일 자체가 애초에 큰 도전이었다. 창간호 기사부터 독자 친화적인 기사 쓰기를 하려고 애썼다. 지난 2005년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으로부터 한겨레와 함께 우리말 지킴이로 뽑힌 일은 그 성과다. 당시 지역 언론사로서는 보기 드물게 우리 말을 쓰는 노력을 계속하고 쉬운 기사 쓰기 운동을 벌여 우리 겨레말을 살리는 데 앞장섰다고 평가받았다.

온라인 대응도 남달랐다. 창간 이듬해인 2000년부터 바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발 빠르게 온라인 시대를 준비했다. 2008년에는 국내 최초 지역 메타블로그 <블로그's 경남>(현재 갱상도블로그)도 만들어 전국의 블로거를 참여시켰다. 이런 노력을 페이스북, 유튜브 등으로 확대해 지금은 뉴미디어에 강한 지역신문사로 인정받고 있다. 경남도민일보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매년 여는 지역신문 콘퍼런스에서 2011년 대상, 2012년 은상, 2014년 금상·은상, 2015년 대상·은상을 연속 수상했다. 이는 그동안 경남도민일보가 얼마나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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