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인 가성비는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흔히 싼값에 질 좋은 제품을 구할 때 가성비가 높다고 표현한다. 자동차가 단위 주행 거리 또는 단위 시간당 소비하는 연료의 양을 뜻하는 '연비'와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가성비는 단순히 제품뿐만 아니라 아파트·자동차·여행·축제, 심지어 프로운동선수 등 사람한테도 쓰인다. 이른바 '가성비 갑(甲)'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평창 롱패딩'이 가성비로 인기몰이를 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줄을 서서 사고, 품귀현상까지 빚어졌다. '한정판' 소장 심리도 한몫했다. 평창 롱패딩을 만든 토종 의류업체인 신성통상 염태순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흥행 요인을 가성비 갑이 아니라 "비정상가의 정상가화"라고 표현했다. 생산 공정을 줄이고 회사 이익을 줄이면 얼마든지 가능한 가격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가성비 좋은 제품이란 싸고 괜찮은 제품이 아니라, 괜찮은데 싼 제품이다. 품질이 먼저고 가격은 그 뒤다"고 했다. 조삼모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가성비 의미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예전 어른들은 비싸더라도 좋은 제품을 사서 오래 쓰라는 말을 자주 했다. 모든 게 귀했던 시절, 하나를 사더라도 제대로 된 것을 사야 두고두고 쓸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비싸야 잘 팔린다'는 명품 고가 마케팅으로 변질된 게 아닐까. 과시용이나 허영심으로 고가 제품을 구매하는 현상을 뜻하는 '베블런 효과'도 여전히 유효하다. 명품까지는 아니더라도 '메이커(브랜드)'를 따지는 소비심리가 강하다. 그러다보니 상품가격에 거품이 낀다. 한 대형마트는 '노 브랜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보여 인지도를 얻고 있다.

물질 풍요시대에 요즘처럼 가성비를 따지는 건 그만큼 팍팍해진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사회 현상이 아닐까. 다만 싸게 사서 쉽게 버리는 게 가성비의 진정한 의미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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