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상담을 정리한다. 상담 대부분은 법률전문위원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한다. 회사의 어려운 재정으로 또는 고의에 의한 임금체불, 관례화된 산재은폐, 10년 이상 중량물 취급 노동으로 얻은 병의 산재 여부, 불법파견 진정, 하자가 있는 절차에 의한 부당해고, 입주자 대표자가 업무질책을 하면서 쏟아낸 폭언들, 초과한 연차휴가일수로 인한 결근 처리 등이 있었다. 그리고 전세금 하락이나 임대보증금 관련 상담도 있었다. 상담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문제해결을 위해서이지만 대화의 마지막은 '다른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피해를 보지 않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내는 목소리는 현재를 들려주는 것이지만 결국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밑그림을 그리는 '영험한 소리'(?)이기도 하다.

어느 제빵기사의 목소리가 <비상구>를 통해 '제빵기사 불법파견'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파리바게뜨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에서 파리바게뜨 본사에 '직접고용'을 지시하였다. 법의 테두리가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기도 하지만 그 테두리에서 밀려나 있는 현실들이 너무나 많다. 근로기준법을 부분적용 받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 열악한 노동조건에 무자비하게 던져지는 실습생들, '배움페이' 또는 '열정페이'를 강요당하는 노동자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정관리사 그리고 특수고용노동자들, 재계약 공포에 시달려야 하는 비정규직 등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노동자의 '오늘'이 그러하다. 그 '오늘'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많은 실태조사와 인터뷰 등을 통해 차마 보여주기, 말하기 낯부끄러운 노동현장을 고발하면서 '폐지하라' '인정하라' '보장하라' 등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있다. 우리가 함께 행복해지려면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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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비상구>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본다. 상담 이후 어떻게 진행은 되고 있는지, 다른 일은 더 생기지 않았는지를 물어보면서 다시 속풀이를 나눠본다.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신다. 불법파견 대질조사를 앞두고 있거나, 중노위 구제신청을 준비하고 있다는 씩씩한 목소리를 들려줬다. 그리고 비록 폭언 사건이 법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아 퇴사를 하지만 행위자와의 조금 변화된 태도를 보면서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노동자의, 사측의 눈치를 보면서 산재신청을 고민하는 노동자의 짠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온다. 하지만, 미래를 저버린 목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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