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말을 걸기 전, 꼭 앞에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모르겠지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모르겠지만, 105번 버스가 여기 서는가?"라고 묻는 할아버지,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날씨가 너무 춥죠?" 친근하게 말하는 택시 기사,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모르겠지만, 몸에 군살이 없네." 칭찬하는 목욕탕 아줌마.

그들에게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은 "실례합니다."와 비슷한 의미인 듯하다.

그럼에도, 나는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을 들을때면 몇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내가 아가씨든 아줌마든, 무슨 상관인데요? 들이받고 싶다가도, 아가씨로 보이기엔 내 나이가 만만치 않음에 씁쓸해진다. 세상의 여성이 아가씨와 아줌마, 두 부류밖에 없나요? 까칠하게 되묻고 싶다가도, 아무렇지 않은 그들의 표정을 보면 나도 아무렇지 않게 덮어 버린다.

그리고 혼자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을 되씹는다. 그 말 속에는 비혼 여성이 없음을 발견한다. 아가씨는 언젠가는 결혼할 미혼 여성으로, 아줌마는 이미 결혼한 기혼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음에 불쾌함을 느낀다. 견고하면서도 촘촘하게 짜인 혼인중심 사회에서 비혼 여성인 나는 어떻게 인생을 개척해야 하는지, 답답해진다.

결혼이 당연한 사회에서 비혼은 마이너리티다. 인식을 하든 못하든, 크고 작은 불평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지육신이 멀쩡한 사람이 왜 결혼을 안 해?"라는 식의 뭔가 결핍이 많은 인간으로 취급받는 건 기본,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을 받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우리 집만 봐도 그렇다. 여느 집처럼 우리 집도 한 달에 얼마씩 가족 계를 붓고 있다. 하지만, 난 한 번도 가족 계에서 혜택을 받은 적이 없다. 가족 계에서 축하 명목으로 돈을 주는 행사는 결혼, 출산, 돌잔치, 자녀입학, 집들이로 기혼자만 누릴 수 있는 경사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비혼인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지갑으로 돌아올 수 없는 곗돈을 매달 꼬박꼬박 넣고 있다. 그깟 돈이 아까운 것보다 기혼중심의 당연한 사고에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본전 생각에 나도 입양을 해서 돌잔치도 하고 입학도 시킬까? 하는 농담을 던지지만 안타깝게도 그것마저 비혼 여성은 어려운 현실이다. 입양도 결혼을 한 사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비혼은 아이를 입양할 자격이 없다.

공무원 연금법도 마찬가지, 비혼을 차별한다. 현행법상 공무원 연금은 당사자가 사망할 경우, 배우자 외에는 승계할 수가 없다. 배우자가 없는 비혼은 승계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배우자보다 더 의지했던 가족도, 배우자와 같았던 절친에게도 물려줄 수 없다. 오직 결혼한 상대에게만 승계할 수 있다. 똑같은 공무원인데, 기혼과 비혼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휴가도 마찬가지, 결혼과 관련된 휴가는 있어도 비혼과 관련된 휴가를 주는 직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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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찍 하든 늦게 하든, 언젠가는 누구나 결혼을 한다는 전제 아래 만든 법과 제도가 지금 현실과 맞을 리가 없다. 결혼은 선택사항이지 필수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비혼을 차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식의 혼인은 정상, 비혼은 비정상이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또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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