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청년희망순례단 인천∼팽목항 여정
사람이 다시 길이 되는 순례로 이어지길

큰딸 예슬이는 길을 걸으며 자연과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그 길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글로 담기를 좋아한다. 재작년 산티아고 순례길, 1000㎞를 걸으면서 깊은 묵상과 깨달음을 경험한 후 걷는 일은 예슬이의 삶에 한 부분이 되었다. 예슬이는 지금도 서해 길을 따라 순례 중이다.

'416 청년희망순례단'은 인천항에서 팽목항까지 서해안을 따라 809.16㎞를 걷고 있다. 10월 15일부터 12월 9일까지 54일간의 여정을 통해 마을과 마을, 길과 사람이 연결되는 길을 걷고 있는데 이들이 걷는 길이 '세월호 평화 순례길'로 조성될 계획이라고 한다. 식사할 때나 길을 잘못 들어 서로 의논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 일렬로 줄을 지어 조용히 길을 걷고 있다. 그 걸음은 그 자체로 기도이며 조용한 외침이다.

청년들이 아픈 역사를 다시 희망으로, 기억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길을 걷고 있음이 벅차고 또 어른으로서 부끄럽기도 하다. 우리 마을의 농부님들도 예슬이와 순례단을 응원하며 고맙다고 하신다.

길을 걸으며 만난 분들이 순례단에 밥을 주고 잠자리를 내어준다. 우리가 모두 함께 걸어야 할 길이지만 그럴 수 없어 미안하고 청년들이 그 길을 가주어서 어른으로서 고마운 것이다.

11월 24일 '사회적 참사법'이 통과되었다. 오래고 질긴 기다림 끝에 얻어낸 결과다. 당연한 것을 요구하고 당연한 것을 지키려 하는 것인데 이렇게 아픈 시간이 필요했다. 세월호 사건은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우리 모두 살아있는 한 그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 아픈 이름을 걸고 청년들이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이 순례는 감동이고 희망이다.

이 순례길이 이어지지 못했던 길과 사람 그리고 마을을 잇는 연결점이 되면 좋겠다. 보이지 않는 담으로 막힌 길이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까지 연결되는 열린 길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이 길을 걷는 누군가가 진정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순간들을 기억하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순례자로 살기를 소망한다.

길은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을 통해 열린다. 길은 있는데 사람이 그 길을 가지 않으면 곧 길은 없어지기 마련이다. 길에서 길을 만들고 사람이 다시 길이 되는 순례가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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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청년희망순례단'이 걷는 길이 순례길로 만들어지면 또 다른 희망의 걸음이 이어질 것이다. 그 걸음들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를 치유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길은 함께 가야 희망이 된다. 희망의 길은 서로 이어주는 평화가 된다. 마을이 사라지고 이웃이 없어지는 오늘, 사람이 희망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그 어디에서도 희망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앞을 보고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동안 무엇을 잃고 놓쳤는지조차 모른 채 여기까지 왔다. 가장 아픈 역사를 가슴에 품고 이제는 다시 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길 위에 선 청년들과 함께 희망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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