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녹차 세계중요농업유산 선정 쾌거
농업 희생 조장 말고 살리는 길 택해야

화개 골짜기의 녹차 농업이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가 선정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선정된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농업 방법과 생물 다양성, 전통농업지식 등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산도의 구들장 논과 제주의 밭담 농업시스템이 등재되어 있는데 하동 화개골 녹차의 선정은 또 하나의 쾌거이며 반가운 소식이다.

신라 하대에 김대렴이 씨를 뿌린 이래 화개 골짜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같이 수많은 곡절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화개골 녹차는 전 세계적으로 위도가 가장 높은 곳에서 재배되고 있다. 그만큼 기후조건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견디려면 농민들의 특별한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견뎌내어도 또 다른 난관도 있었다. 음용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차였을 것이나 차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는 '웬수'와 같은 시절도 있었다. 오죽하면 권력의 가렴주구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밤에 몰래 차나무를 베어버리기까지 했을까.

청산도의 구들장 논과 제주도의 밭담 농업도 그 속내를 보면 살아남기 위해 자연조건에 도전한 인간의 항쟁이 남긴 유물이며 그 속에서 스러져간 사람들에게는 가슴 시린 아픔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개골 차 농사와 청산도 구들장 농업, 제주도 밭담 농업은 끝내 그 농업을 붙들었던 사람들을 살려 내어서 세계가 인정하는 농업유산으로서의 왕관을 썼다.

그러나 왕관은 썼으나 그 미래가 휘황찬란한 것은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보존을 위한 노력을 하겠지만 액자농업으로서의 가치에 머물고 말 염려가 점점 커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농사는 짓는 사람을 먹여 살리지 못하면 멸절되고 만다.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선정되었지만 관광에는 쓸모가 있어도 그것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삶은 점점 퍽퍽해지고 있다.

화개골 녹차는 우리나라가 좀 먹고살 만해진 이후 잠깐 빛이 감도는가 했더니 중국 차에 밀렸고 이제는 커피에 밀려나고 있다. 더욱이나 일제가 뿌려놓은 차 재배지에 밀려 종주로서의 권위마저 퇴색해 가고 있으니 그야말로 고진감래로 왕관은 썼으나 다스릴 백성은 없는 만화 같은 현실이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 농업의 현실은 더욱 암담하다. 나라가 열린 이래 백성을 먹여 살린 농업과 농업가치는 나락으로 떨어진 지 오래이지만 갈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갈 일만 남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한미FTA 재협상은 정부가 아니라고 해도 또다시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소비 성향이 달라져 소위 전통적, 토착적 먹거리를 외면하고 수입 농산물을 선호하는 경향은 마지막 숨통마저 끊어 놓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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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이런데 귀농자 등 새로운 농업인구가 늘면서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 폭락도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감은 처치 곤란이고 작년에 갈아엎도록 했던 고추 가격은 올해 작년 반값으로 떨어졌다. 김장철에 배추밭을 갈아엎는 현실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더 이상 농업의 희생을 조장하지 말고 살리는 정책으로 대전환을 해야 한다. 농업은 생명이다. 쾌거가 분명한 소식에도 씁쓸한 현실이 더는 지속하지 말기를 올 한 해 가장 컸다는 보름달을 붙잡고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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