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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추적 이은상] (1) 피어린 육백리를 다녀온 이은상의 우익청년단체 활동

전점석 마산역사문화유산보전회 운영위원 jjseuk@tistory.com 입력 : 2017-12-05 16:14:59 화     노출 : 2017-12-05 16:40:00 화

전점석 마산역사문화유산보전회 운영위원(전 창원YMCA 사무총장)이 마산 출신의 시조시인 이은상에 대한 인물추적을 시작했다. 이은상은 마산뿐 아니라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독립운동가이며 위대한 시인이자 작가라며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다른 쪽에선 독재 권력에 빌붙어 양지만을 좇아온 기회주의자이며 친일 의혹까지 있는 인물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이에 월간 <피플파워>는 그에 대한 철저한 조사 작업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전점석 운영위원의 작업 결과물을 연재하기로 했다.

김봉천 씨가 쓴 <노산 이은상 선생>에 실려 있는 노산의 약력을 보면 1965년 10월부터 한국청년운동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였다고 되어 있다. 청년 시절인 일제시대 말기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혹독하게 고생한 노산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60년대 중반에 어떤 청년운동을 했을지가 궁금하였다. 1903년생인 노산의 나이가 60세를 넘어서서도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극우 청년단체 활동을 한 것이었다. 강력한 국가 지도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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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대한민국건국회의 이은상 관련 현수막.

1962년, 첫 번째 휴전선 종주

노산은 생전에 두 번의 휴전선 종주를 했다. 첫 번째 휴전선 종주는 조선일보의 제안으로 1962년 6월 25일을 전후해 10일간의 일정으로 육백 리의 서쪽 끝 강화에서 동쪽 끝 명호리까지 155마일 휴전선을 답사했다. 다녀온 기행문을 조선일보에 40여 일간 연재하고 나서 같은 해 <피어린 육백리>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책의 서문에는 허리가 잘린 지 17년, 6·25동란이 일어난 지 12년, 다시 또 휴전선이 그어진 지 9년이 지나도록 원한의 선이 무너지지 않음을 안타까이 생각하면서 자신은 '기행문을 통해 글을 남기려는 것이 아니라 뜻을 남기고자 하는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책 제목의 '피어린'은 6·25를, '육백리'는 휴전선의 길이이다. 노산이 휴전선 일대의 격전지를 둘러보며 민족이 처해 있는 비극에 대한 울분으로 쓴 기행문이다. 분단현장을 답사하면서 역사와 풍경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하였다. 그는 책 전체에 느낌표를 많이 사용하였다. 숨기지 않은 그의 뜨거운 감정은 많은 문장에 감탄부호를 남겼다. 노산이 비장하고 경건하게 조국 통일을 기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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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산가고파 시비 보존 및 마산사랑 범시민 결의 대회.

종주 마지막 날, 동해안 백사장의 마지막 철조망 쇠말뚝을 잡고 울던 노산은 '언제까지고 여기서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차라리 돌아가 할 일이 있지 않으냐'라고 하면서 철조망을 뚫는 일보다 먼저 할 일이 있는데 민족과 인류를 저 <역사의 함정>으로부터 구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 부분은 70년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었다.

노산은 1980년에 다시 휴전선을 방문했다. 첫 번째 휴전선 종주를 한 지 18년 만이었다. 두 번째의 휴전선 종주를 마친 노산은 영원히 굳어져 가는 휴전선을 안타까워 하면서 42 제목, 205 수의 <기원>이라는 생애 마지막 시집을 내었다. 죽기 5개월 전인 1982년 4월에 출판하였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당신이었고 종교였던 조국은 항상 백척간두에 서 있었다.

청우회 중앙본부 제2대~10대 회장

1962년의 첫 번째 휴전선 종주를 하고 나서 노산은 그냥 이대로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의 선택은 청년운동이었다. 휴전선을 다녀온 1년 뒤인 1963년 10월 10일 해방 직후의 전투적인 극우 청년 운동 단체인 대한청년단이 청우회라는 이름으로 재창립되었다. 이 단체의 제2대 회장이 된 1965년 10월 10일부터 죽을 때까지 무려 17년간이나 열심히 활동한 것을 보면 이 단체야말로 휴전선을 걷어내고 통일 조국의 미래를 건설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4년 뒤 1969년 6월 25일, 청우회 중앙본부 반공청년운동 기념비 건립위원회가 박정희 대통령의 하사금과 정일권, 김종필, 이범석, 유진산, 안호상, 이후락, 방일영, 김성곤 등의 성금으로 반공청년운동기념비를 서울 남산에 세웠다. 건립위원회의 회장은 이은상이고 상임고문 이선근, 고문 이범석, 유진산, 안호상, 전진한, 임영신이었다. 이은상은 당시 청우회 중앙본부 회장이었다. 기념비 제막식 사진을 보면 노산과 함께 이선근, 정일권, 김성곤이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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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청년운동기념비.

비의 앞면에는 세로로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 라고 새겨져 있다. 노산이 1968년 5월 17일 마산 창신고등학교 개교 60주년 기념강연회 주제도 이 제목이었고 1969년, 횃불사에서 발간한 책 제목도 똑같다. 뒷면에는 노산 이은상이 쓴 비문이 있다.

해 돋는 동방의 나라 / 아름다운 내 조국 / 화랑의 얼을 이어받은 너와 나 / 피와 사랑으로 얽힌 동지여 / 자유 평화 정의의 깃발을 들고 / 승리의 신념으로 뭉쳐 나가자 / 밝고 바른 영광의 새 역사 / 이루기까지 이루기까지

기념비 건립기에 의하면 해방 후 정부수립에 이르기까지 반공청년운동을 한 대한청년단이 1953년 정부 정책으로 해산되었는데 10년이 지난 1963년에 다시 모여 청우회를 결성하고 남로당 공산세력과 맞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결사 항전하다가 순직했거나 6·25 남침 때 군경을 도와 조국 수호에 나섰다가 전사한 애국청년들을 추모하고 반공 투쟁의 빛나는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고 한다. 매년 6월, 이 기념비 앞에서 추모제를 하고 있다.

1968년 개천절에 쓴 노산의 글이 기념비 후면 아래에도 새겨져 있다.

강산은 아름다운데 역사는 기구도 하다 / 민족은 해방되어도 국토는 갈라졌었고 / 혈통은 하나여만은 사상은 둘로 나뉘어 / 그로써 쓰린 역사가 이 땅을 지나갔었다 / 슬프다 1950년 뼈저린 6·25동란 / 북한의 공산도당들 남한을 침공했을 때 / 조국과 자유를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니 / 피흘린 청년동지들 17274명이라 / 살아서 남은 벗들이 이곳에 비를 세우고 / 비 아래 위패를 묻어 혼령을 모시었나니 / 원한의 혼백들이여 여기 평안히 쉬시라 / 돌아보건대 지난 날 수많은 청년단체들 / 하나로 뭉쳤던 것이 삼백만 대한청년단 / 그 전통 이은 동지들 청우회로 다시 모여 / 반공투쟁 다짐하고 통일을 맹세하노니 / 여기 세운 이 비석은 돌 아니요 심장이다 / 맥박이 뛰지 않느냐 숨소리도 들려온다 / 피끓는 젊은이들아 승리는 우리 것이니 / 일어나 힘을 길러라 눈부신 역사를 짓자

평소 노산에게는 서원(誓願)이 세 가지 있었다. 첫째는 국토예찬이고, 두 번째는 우리 역사와 전통을 발양해보고 싶은 것, 세 번째는 구국행(救國行)을 짓고 있는 모든 동지들 앞에 경례해보고 싶은 것이라고 하였다. 124쪽 이제 반공청년운동 기념비를 건립하여서 노산의 세 번째 서원인 동지들 앞에 경례하는 정기적인 행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념비를 건립한 1969년은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고 3선 개헌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이 확보된 시기였다.

8개 청년단체들이 모인 대한청년단

청우회의 역사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직후 반탁, 반공 투쟁으로 대한민국 건국운동에 앞장 선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전진한), 대한민국촉성국민회청년단(강낙원), 대한민주청년동맹(유진산), 한국광복청년회(오광선), 대한독립청년단(서상천), 대한민족청년단(이범석), 서북청년단(선우기성), 대동청년단(지청천) 등 8개 단체 청년들이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12월 19일 300만 대한청년단(총재 이승만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유일한 전국조직인 청년단체로 통합하였다. 통합된 대한청년단의 감찰국장은 나중에 국민방위군 사령관이 되어 사형을 당한 김윤근이고, 부국장이 김두한, 감찰부장이 정치깡패 이화룡이었다. 1945년 11월에 창립된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과 대한독립청년단은 이승만 계열이었으며 전국청년총연맹은 전국조직으로 가장 큰 회원 296만 명이었고 부총재는 김구였다. 독립청년단과 광복청년회가 11만 명으로 그다음이었으며 1946년 4월에 결성된 대한민주청년동맹은 서울에서만 활동하였다. 대한민주청년동맹의 명예회장은 이승만, 김구이고 회장은 유진산, 감찰부장은 김두한이었다. 당시 청년단체의 감찰부는 백색테러의 행동대였다. 우익이 파업진압자금을, 경찰이 무기를 제공했고 60명 단위로 50개의 특공대를 조직했다. 완장을 차고 장총, 단검 등으로 무장하고 주로 경상북도 일대에서 활동했다. 우익청년단 하루 일당이 300~500원이었다. 당시 노동자 평균 하루 임금이 60원이던 상황에서 대단히 매혹적인 일자리였다. 당시 미군정 경찰의 강력한 후원을 받은 우익청년단체들은 특히 1946년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서북청년단은 1946년, 북에서 월남한 평남, 평북, 함남, 함북, 황해도의 5도 청년들이 만든 극우 반공단체이다. 선우기성이 중앙집행위원장이었다. 이들은 우익의 선봉에 서서 좌익에 대한 무분별한 폭력행위를 일삼았다. 이들의 이런 경향을 파악한 미 군정청은 1948년 제주 4·3항쟁 진압에 이들을 동원했고 이들은 빨갱이 토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무고한 제주도민을 대량 학살하였다. 1948년 12월 10일, 이승만 대통령이 서북청년단 총회에 참석해 제주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사상이 투철한 여러분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동료들과 함께 제주도에 와서 경찰과 군인이 되었다고 서북청년단 출신 경찰관이 증언하기도 했다. 서북청년단은 봉급 없는 경찰보조 역할을 하면서 갈취와 폭행을 일삼았다. 김구 암살범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출신이었다.  서북청년단 부단장 김성주는 안두희 재판이 열리자 회원들과 함께 안두희가 애국충정의 의사라고 외치며 석방을 요구하는 전단을 살포하기도 했다. 전국청년총연맹은 주로 경찰의 폭동진압에 협조하였고 독립청년단, 광복청년회는 군사적 경향, 테러집단으로 비난받았다. 이 당시에는 좌익 청년단체도 폭력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미 군정청의 협조와 보호를 받지 못한 게 다른 점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청년단을 법적 근거도 없는 청년방위대라는 반군사조직으로 만들어 향토방위에 투입시켰다. 그리고 1·4후퇴를 할 때에는 국민방위군 설치령에 따라 이 조직을 개편해 국민방위군을 조직, 이동, 훈련시키는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20여만 명의 국민방위군에게 배당되는 자금을 소수의 간부들이 착복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 책임을 지고 5명의 간부가 처형되면서 대한청년단은 극도로 약화되었다. 그 후 제4대 안호상 단장, 제5대 유지원 단장 등이 재건을 모색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향토방위를 목적으로 한 민병대의 창설과 전국의 청년들을 민병대에 규합한다고 발표했으며 이에 따라 1953년 9월 10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대한청년단 해산이 선포되었다. 이로써 해방 후 8년 동안 지속되었던 남한에서의 우익청년운동이 중단되었다. 이 단체의 성격은 선언문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총재 이승만 박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우리는 피와 열과 힘을 뭉치어 남북통일을 시급히 완수하여 대한민국의 국위를 천하에 선양하기를 맹세한다. 민족과 국가를 파괴하려는 공산주의의 도구배를 남김없이 말살하여 버리기를 맹세한다. 다음백과, 대한청년단

1962년, 10년 만에 청우회로 부활

해산된 지 10년이 지난 1962년 12월 23일, 과거 청년운동을 함께 한 18명이 모여서 앞으로 위령제라도 함께 지내자는 의논을 하였고 다음 해인 1963년 2월 18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청년운동 지도자들이 모여 청년단체의 부활을 의논한 다음 같은 해 10월 10일 서울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전국 청년운동자 대표 2118명이 참석하여 청우회란 이름으로 다시 조직하면서 한국청년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반공 투쟁의 대열을 정비하였다. 이때는 문화공보부 등록 사회단체였다.

제1대 회장 오광선이 1963~1965년까지 활동하였는데 이때 단체 명칭은 청우회였다. 이은상은 제2~10대 회장을 연임하면서 1965~1983년까지 무려 18년간 활동하였다고 단체 연혁에는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1982년까지가 정확하다. 22대의 단체 연혁에서 9대를 계속하였다. 역대 16명의 회장 중에서 가장 오래 활동하였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활동한 단체이다. 노산이 한평생을 바쳐 열심히 활동한 충무공기념사업회와 한국산악회보다 회장 재임 기간이 더 길다. 1972년 10월 청우회 중앙본부 회장으로 있으면서 '무질서와 비능률을 배제하여 국기를 공고히 하려는 박 대통령의 영단에 적극 찬동한다'는 뜻의 유신 지지성명을 발표했다. 회장 재임 중인 1975년에 단체 명칭을 한국청년운동협의회로 바꾸었으며 제1회 반공청년운동 순국자 합동추념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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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3대 회장 윤치영은 1984년~1989년까지 활동하였는데 재임 중인 1987년에 단체명칭을 건국청년운동협의회로 바꾸었다. 10여년이 지난 1995년에 다시 대한민국건국회로 변경하고 1997년 공보처로부터 법인 허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오랜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건국회 중앙회가 부도 직전에 처했었는데 2013년 정기총회에서 선출된 제22대 권영해(전 국방부장관, 안기부장) 회장의 지도력으로 새롭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 7개 시도 지역본부와 7개 시군지부를 갖고 있으며 산하에 청년단과 의료봉사단도 있다. 청년단은 주로 대북심리전을 전개하면서 탈북자 지원 활동, 대북 전단 살포, 북한 인권 사진전 등을 개최하였다.

현재 건국회는 자유민주체제 수호를 위한 사업과 건국이념 홍보, 계도사업, 건국청년운동사 편찬과 건국유공자들을 위한 사업, 각 지회의 순국위령비 건립, 안보학술세미나 등을 하는 행정안전부 소속 비영리법인이다. 이 단체가 관리하는 강원도 춘천시의 충혼탑은 2002년에, 서울 남산에 있는 반공청년운동 순국열사 기념비는 2013년에 각각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시설로 지정받았다. 2014년 6월 25일, 남산에 있는 순국열사비에서 유족회, 한국논단 발행인, 이승만대통령기념사업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가졌는데 18년 동안 대한민국건국회를 이끌어왔던 노산의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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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건국회의 8·15 행사 모습.

가고파시비 보존 결의대회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활동

대한민국건국회가 최근에 어떤 활동을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첫 번째는 가고파 시비 보존결의대회이다. 건국회는 노산 가고파 시비보존회가 주최, 노산동주민자치위원회, 노산동도시재생추진위원회가 주관하여 2013년 7월 9일 저녁 마산역 광장에서 3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노산 가고파 시비 보존 및 마산사랑 범시민결의대회'를 후원했다. 시비보존회 공동의장은 조민규 이사장(합포문화동인회), 윤영호 총재(국제로타리3720지구), 조현술 회장(가락문학회)이고, 한국시조시인협회, 박정희 대통령정신문화선양회 영남본부, 마산살리기범시민연합, 3·15의거희생유족회 등 50여 개 단체가 참여한 이 행사에는 김복근 회장(노산시조연구회), 조용식 회장(경남상인연합회), 홍판출 전 위원장(노산동주민자치위원회), 김봉호 회장(남마산 로타리클럽) 등이 참석하여 발언하였다. 그런데 대한민국건국회 전석환 수석부대표가 연단에 오르면서 이념 공세가 본격화됐다. 대한민국건국회는 이 행사의 후원 단체였고 권영해(전 국방부장관) 대한건국회 회장을 대신해 전석환 수석부대표가 참석한 것이었다. 전 수석부대표는 "내 고향이 이북이다. 빨갱이들이 하는 짓이 바로 (시비를 훼손하는)이런 짓이다. 빨갱이 새XX은 동네 존경받는 분들의 비를 부수고 다니는 게 일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동안 빨갱이 새XX이 우리 주변에서 기고만장했다. 잘나가는 사람들을 몽땅 없애라는 지령을 받은 놈들이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반대 활동이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2017년 2월 25일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에서 주최한 탄핵반대 집회에서도 권영해 회장은 '헌법재판소가 27일에 심리를 끝내면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26일에는 대구 중구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열린 탄핵반대 집회에도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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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2월 6일 노산 이은상 가고파 시비 제막식.

건국회 권영해 회장(대통령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공동대표, 탄기국)은 최근 대통령 탄핵 각하를 요구하면서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길 건너편에 세워둔 1t 봉고 화물차 위에 텐트를 치고 2017년 2월 28일부터 금식을 하다가 혈당저하로 8일 보훈병원으로 옮겨졌다. 금식 이유는 '이대로 있다가는 나라가 망할 것 같아서' 였다. 권영해 회장은 81세 고령이며 교회 장로이다. 3월 2일 자유한국당 김진태 국회의원이 위로차 방문하였다.

권영해 회장은 4월 5일 장충체육관에서 창당대회를 열고 출범한 새누리당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갑자기 홍준표 후보 지지선언을 하고 5월 1일 탈당하였다. 이어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서 배신자라고 욕먹기도 하였다.

최근 건국회는 제2의 통일건국운동 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2017년 4월에 단체 명칭을 '대한민국통일건국회'로 바꾸었다. 행정자치부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증에 의하면 주된 사업은 건국이념의 계몽 및 홍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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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반대 집회 자리에 선 건국회 권영해 회장.

2013년 마산역광장 가고파시비 철거사건 진행과정

- 2013년 2월 4일 : 마산역 광장에 가고파 시비를 건립하고 6일 국제로터리클럽이 주관하여 제막식을 하였고, 3·15정신계승 시민단체연대회의, 부마항쟁기념사업회, 6월항쟁정신계승경남사업회는 제막식 항의시위를 함. 2월 13일 마산역 광장 이은상 시비 철거대책위원회가 시비 즉각 철거를 요구하는 펼침막을 시비 위에 내걸었음.

- 2월 17일 :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가고파 시비에 대한 성명서 발표.

- 3월 4일 : 문인협회의 일부 회원들이 참여하는 노산 이은상 사랑모임에서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시비 철거 반대 기자회견을 함.

- 3월 14일 오전 : 마산역 역무원은 붉은색, 검은색 페인트가 <이은상 시비>라는 문구를 가리면서 흘러내린 자국과 시비 중앙에 역시 붉은색, 검은색 페인트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함.

- 3월 14일 오후 : 창원지역 2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마산역 광장 이은상 시비 철거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시비 앞에서 집회를 열고 시비에 계란과 밀가루를 투척하는 퍼포먼스를 벌임.

- 3월 15일 : 마산역 광장 이은상 시비 철거를 위한 대책위원회 10여 명은 이날까지 철거시한을 정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마산역장실 점거를 시도함.

- 4월 초순 : 마산역 광장 이은상 시비 철거대책위원회는 코레일 사장에게 4월 19일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중장비를 동원해 직접 철거하겠다는 공개서한을 보냄.

- 4월 19일 : 마산역 광장 이은상 시비 철거대책위원회 50여 명은 시비를 철거하려 했으나 크레인 진입을 할 수 없어서 무산되고 오후에 53주년 4.19의거정신계승 실천대회를 개최함.

- 5월 7일 : 이은상 시비 문제해결을 위한 중재단이 중재안을 내었으나 로터리클럽에서 받아들이지 않음.

- 5월 8일 : '가고파 시비를 사랑하는 시민'이라는 이름표를 단 시민들이 가고파 시비에 묻어있는 페인트를 벗기는 작업을 함.

- 5월 25일 : 노산 이은상 사랑모임에서 가고파 시비의 페인트 지우기 작업을 함. 행사를 마치고 주변의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나누어 줌. 기념사진(가고파를 사랑하는 문인들, 경남시조시인협회)

- 5월 30일 : 마산역 광장 시비 보존회 발기인 모임

- 7월 9일 : 마산역 광장에서 '노산 가고파 시비 보존 및 마산사랑 범시민결의대회' 개최함.

- 11월 14일 : 3·15정신계승 시민단체연대회의, 민주노총 경남본부, 한국철도노조 부산경남본부는 마산역 광장에서 3·15정신계승 실천대회를 개최하고 민주성지 마산수호비를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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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상 시비 설치를 반대하는 마산역 이은상 시비 철거대책위원회.

참고문헌 

- 김봉천 <노산 이은상 선생> (창신고등학교, 2002)

- 김승일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 조선의용군 석정 윤세주 열사> (도서출판 고구려, 2001)

- 이은상 <三願, 노산문 학선> (탐구당, 1975)

- 한홍구 <대한민국史 1권> (한겨레출판, 2003)

- 노경채 <한국독립당연구> (도서출판 신서원, 1996)

- 심용환 <심용환의 역사토크> (휴머니스트, 2017)

- 한홍구 <대한민국史 1권> (한겨레출판, 2006)

- 김민철 외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현대사> (내일을 여는 책, 2017)

- 임기상 <숨어있는 한국현대사> (인문서원, 2015)

- 김인걸 외 <한국현대사 강의> (돌베개, 1998)

- 정운현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역사 37장면> (역사비평사, 1903)

- 경남도민일보 2017.7.9.

- 경남도민일보 2013.7.11.

- 제주4·3 평화기념관 전시실

- 나무위키 자료, namu.wiki/w/이은상

- 이주영 <짧은 인생, 영원한 조국에 바쳐>, 시정일보, 2014.6.25 

- 주동식 <뉴스인포토닷컴> 2017.3.4. www.newsinphoto.com / <뉴데일리> www.newsdaily.co.kr 

- <대한민국통일건국회> www.ucgeongu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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