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 달리지만 사는 동안에는 건강해야지"

올해 나이 아흔하나

"몸도 몸이지만 인자 정신이 깜빡깜빡해. 가만있자. 내 나이가 몇이지?"

지난 13일 합천군 야로면 사회복지회관에서 만난 배순효(90) 어르신께 연세를 물었지만 당신의 나이도 잊고 있었다. 옆에 있던 야로보건지소 서유정 씨가 "어머니, 1927년생이잖아요. 우리 나이로 구십 하나네요" 하고 일깨워주니 "아 맞다 내 나이 90을 넘겼구나" 한다.

배 어르신은 지난 6월 제주에서 열린 전국 어르신 체육대회에 출전했다. 출전하고 보니 최고령 출전자였다고 했다. 어르신이 속한 '야로면 건강체조단'은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한껏 성가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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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순효 어르신. / 정성인 기자

배 어르신은 '꽃띠' 열아홉에 4살 어린 정광선 어르신과 결혼했다. 야로면 청계리에서 나서 결혼하고 슬하 1녀 2남이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도 야로를 떠나 산 적이 없을 만큼 '야로 촌사람'이다.

지금은 3자녀 모두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자주 고향 부모님을 뵈러 온다고 했다.

젊어서는 야로면 소재지에서 가구점도 운영했지만, 지금은 '영감'이 밭에서 콩대 뽑아다 주면 앉아서 작대기로 콩이나 털곤 하는 게 일이란다.

막강 실버 파워 집단, 야로면 건강체조단

어르신이 함께 운동하는 '야로면 건강체조단'(남자 회장 구화종·74, 여자 회장 심옥자·70)은 합천군은 물론, 전국에서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막강 실버 파워 집단이다.

지난 2004년 야로면에 개인이 운영하는 합기도 체육관에서 건강체조단은 태동했다. 배 어르신은 창단 멤버로 참가했다. 이후 야로면 복지회관이 생기면서 건강체조단이 정식 출범했고, 매주 월·수요일이면 복지관 강당에서 60여 야로면 어르신들이 운동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매주 화·목요일이면 처음 시작했던 체육관과 경로당에서 건강체조를 함께 하는 팀도 있는데, 배 어르신은 양쪽 모두에 참가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달력을 보고,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확인하는 게 일이라니 어찌 보면 '워커 홀릭'(일 중독) 못지않은 '운동 홀릭'처럼 보이기도 한다.

14년째 동네 노인들과 함께 운동으로 어울리다 보니 가슴 아픈 일도 많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 특히 보건지소 사람들이 돌봐준 덕에 어르신 잔치에서 '최고령' 영예도 누렸다고 한사코 겸손을 내보였다.

"6월 제주도 가기 전에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졌어. 비행기 타는 것도 걱정이 많이 됐지. 제주도를 가나 마나 걱정이 많았는데, 여기 서유정 선생이 격려를 많이 해줬어. 그 덕에 억지로 억지로 비행기를 탔지. 제주에 가서도 참 폐를 많이 끼쳤네. 양쪽에서 내 겨드랑이를 끼고 거의 부축해서 다녔으니까. 그래도 참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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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순효 어르신. / 정성인 기자

한국 나이로 '망백'을 넘기면서 어르신 기력이 영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인자 힘이 들어. 잘하지도 못하고. 그래도 집이 여서 가까우니 한 번씩 와서 뒤에 살째기 서서 따라 흉내만 내다가 가곤 그래."

야로면 건강체조단은 원래는 남자부와 여자부로 나눠 따로 운동한다. 11월 13일 취재하러 가겠다고 미리 약속을 잡아뒀더니 남자부 30여 명, 여자부 40여 명 등 모두 70여 명이 제대로 단복으로 복장을 갖추고 복지관 1층 강당에 모두 모여들었다.

김정옥 강사 시범으로 대중가요에 맞춰 팔도 쭉쭉 뻗고, 손뼉도 치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배 어르신이 안 보였다. 체조단 취재와 배 어르신 인터뷰 둘을 목적으로 찾아갔는데 한가지가 안될 처지인지라 속이 타들어 가는 데, 보건지소 서유정 씨가 배 어르신께 전화한다. 배 어르신은 다음 주 월요일에 인터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다음 주에 한 번 더 오지 뭐' 생각하고 어르신들 운동하는 모습을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데, 서 씨가 살짝이 다가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분이 배 어르신'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 말로 '헉'이었다. '망백'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젊어 보여 미수나 고희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정정해 보였다.

하지만 앞뒤 좌우로 늘어서서 함께 운동하는 어르신들에 비하면 확실히 동작이 작고 반 박자쯤 늦은 모습이었다.

"나이도 기력도 달려. 올해는 그래서 더 많이 빠졌네. 그래도 자고 나면 어디로 운동하러 가야 하는지부터 생각해봐. 영감이 콩 타작하라고 뽑아다 주지만, 그거야 운동하고 나서 해도 되고 늦으면 내일 해도 되지만 여기 운동은 내일 오면 안 해. 그러니 여기부터 먼저 와야지 어째."

실제 체조단에 나오는 어르신들은 대부분이 운동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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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 야로면 건강체조단 모습. /정성인 기자

"사는 동안에는 건강하게 살고 싶다"

서유정 씨 말로는 그 폭염이 내리쬐는 한여름에 방학하고 싶은데, 어르신들이 한사코 거절해 방학도 못 한단다.

"폭염 주의보가 막 내리고 하는데, 사실 연세 있으신 어르신들을 운동하러 오시라기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혹서기 혹한기는 방학하고 싶은 게 보건소에 있는 우리 생각입니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방학하면 안 된다고 막 우기시니 지금까지 방학 한 번 못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했네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도 보였다.

체조단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함께 운동하던 이웃이 갑자기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소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같이 운동하면서 건강이 회복되는 것을 보는 것은 집단 힐링에 가깝다고 했다.

한 어르신은 우울증을 심하게 앓아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지인들과 전화 통화도 어려울 정도로 사정이 안 좋았지만 주변의 강력한 권고로 체조를 시작했고, 지금은 스스럼없이 주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운동하고 있다.

다른 한 어르신은 어깨 수술을 받고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재활 치료를 받던 중 체조단을 알게 됐고, 지금은 병원에는 안 가고 일주일에 두 번 함께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어깨 기능을 대부분 회복했다고 했다.

뇌 손상으로 하반신을 거의 쓰지 못하던 어르신도 지금은 많이 회복됐다고 했다. 취재하는 내내 유심히 지켜봤는데, 동작이 약간 어눌하긴 했지만 크게 틀리지 않고 열심히 따라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는 동안에는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배 어르신 소망. 건강은 타고나거나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닦달하고 함께 어울리는 속에서 주어진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우친 어르신의 건강한 삶을 기원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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