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벚꽃 그려요"

매년 봄 우리나라 곳곳은 흰 분홍빛으로 물든다. 평범했던 거리도 벚꽃이 피면 꿈에서 본 듯한 황홀한 분위기로 변한다. 그 포근한 분위기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4월이 되면 진해를 찾는다. 진해 어디를 가도 벚꽃 명소다. 솜사탕을 덮은 듯한 나무들 사이를 거닐며 다가온 봄을 만끽한다. 벚꽃을 그려 만든 상품 판매하는 공방이 있다고 해서 진해를 찾았다. 봄이 아닌 계절에 진해를 찾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 로망스거리에 있는 카페 버찌이야기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화사한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버찌이야기는 카페 겸 공방이다. 커피를 마시러 온 손님들이 머물렀다 가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버찌이야기 상품을 만들고, 간간이 포크아트(공예의 한 종류) 수업을 하기도 한다. 방문했을 때에도 제작 중인 열쇠고리를 볼 수 있었다. 서현란(35) 대표는 1인기업으로서 버찌이야기를 꾸려나가고 있다.

123.jpg
▲ 서현란 버찌이야기 대표. /서정인 기자

취미로 시작한 포크아트, 지인들 권유로 공방 시작

서 대표는 진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결혼한 후에도 진해에서 계속 가정을 꾸리고 살아온, 그야말로 진해 토박이다. 결혼 전에는 건설회사에서 일했다고 했다. 그때 틈틈이 그려오던 그림이 지금의 버찌이야기가 되었다.

"결혼 전에는 회사에 다녔었어요. 퇴근하고서는 포크아트 공방에 다녔죠. 포크아트는 나무 재료나 가구 이런 데에 아크릴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공예예요."

26세에 결혼을 했고 결혼하고서도 취미로 포크아트를 계속했다.

"스트레스 풀 겸 그림으로 리폼 같은 걸 했는데 친구들이 가르쳐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인들과 모여서 제가 가르쳐주고 함께 그리기도 하고 했어요. 처음에는 집에서 했는데 아파트라서 주변이 시끄러울 수도 있으니까 저렴한 점포를 하나 얻었어요. 해군사관학교 가는 길 남원로터리 근처였어요. 큰 아이를 낳고 나서 점포에서 그림 그리기 시작한 게 2012년도예요."

123.jpg
▲ 벚꽃 상품들을 찍은 이미지로 꾸민 벽./ 서정인 기자

공방 이름은 '해피포크아트'였다. 옛 모습이 궁금해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봤더니 공방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오래된 일본식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모습이 이색적이고 예뻤다.

"공방을 재밌게 했어요. 그러다… 군항제가 다가오면 관광객들이 진해에 많이 오잖아요. 벚꽃을 그리는 포크아트 재료가 있어서 무언 가를 만들어서 팔아보자고 마음먹고 벚꽃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군항제는 진해에서 나고 자란 서 대표에게 늘 즐거운 축제였다. 중학생 때는 퍼레이드에 참가했고, 고등학교 때는 교통지도 봉사자로 참여했다. 행사에 참여하면서 축제를 즐기던 시민 입장이기도 했다.

"군항제는 언제 가도 재미있는 축제인데 이걸 기념할만한 재미있는 기념품이 없는 거예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시작했어요. 재미있으니까 친구들과 수익이 안 나더라도 이것저것 만들고 그랬어요. 남들이 안 될 거 같다 했는데 하니까 되더라고요.(웃음)"

서 대표의 첫 벚꽃 아트 상품이 그때 만든 벚꽃 열쇠고리다. 열쇠고리에 하나하나 벚꽃을 그렸다.

"그렇게 팔아 봤는데 많이는 아니더라도 팔리는 거예요. 열쇠고리, 핸드폰 고리 같은 거였어요. 재밌어서 다음해에도 만들어서 팔았는데 팔리더라고요?"

독특한 기념품 없던 군항제에 벚꽃 상품들이 나타났다

진해하면 대부분 군항제를 자동연관어처럼 떠올린다. 봄이 되면 200만 명이 훌쩍 넘는 관광객이 진해에 찾아왔지만 그에 부응하는 마땅한 기념품은 거의 없었다. 유명한 벚꽃빵이나 진해콩 정도가 관광객 손에 들려 있는 정도였다. 군항제에서 서 대표가 벚꽃을 그려 만든 아트 상품을 팔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이것저것 정보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1인창조기업비즈니스센터라는 게 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마침 입주 신청 기간이라 곧바로 전화를 해보았죠. 지원한 첫해에는 저는 해당이 안 된다고 해서 못했어요. '안 되나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다음 해에 또 손님이 센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해봤는데 일단 와보라고 해서 1인창조기업비즈니스센터에 갔죠."

123.jpg
▲ 다양한 버찌이야기 아트 상품. / 서정인 기자

지원서를 냈고 추가 인원으로 합류했다. 서 대표가 상품을 판매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특허 같은 거 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었다.

"창업 지원 외에 저작권이나 아트 상품에 대한 법적인 권리 같은 부분을 알고 싶어서 들어갔어요. 그런 부분에도 도움을 좀 받고 상품 개발에 드는 재료비도 일부 지원받았고요. 벚꽃은 누구나 그릴 수 있기 때문에 특허권을 가질 수는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벚꽃 캐릭터를 만들자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센터에 있으면서 협업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 것도 좋았다.

"센터에 입주하신 디자이너 언니가 있었어요. 저는 손 그림으로 제품을 만들어왔는데 그 언니가 우연히 제 상품을 보시고는 괜찮다고 해서 작업을 의뢰했죠. 아이디어를 형상화하는 데 그분의 도움이 컸어요."

2015년 지금 여좌천 로망스거리 자리로 공방을 옮겼다. 진해 군항제 때 벚꽃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버찌이야기는 세 번째 군항제를 지냈고 다음 군항제를 준비하고 있다.

"예전 점포는 오래된 가옥이어서 분위기가 좋았는데 언제까지 빌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어요. 그래서 한번 옮겨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여좌천으로 오게 됐어요."

버찌이야기는 메뉴에서마저 꽃향기가 나는 듯하다. 사실 벚꽃은 향기가 없는 꽃으로 유명하지만 벚꽃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내놓는 메뉴다.

"버찌라떼는 일본에서 파는 벚꽃파우더를 사 와서 만든 라떼예요. 색상도 핑크라서 아주 예뻐요. 버찌에이드는 체리에이드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벚꽃시럽도 들어가요. 손님들 대부분이 버찌 메뉴가 신기하셔서 드시는데 사실 호불호가 갈리긴 해요. 벚꽃은 원래 향이 없으니 상상해서 만든 인공적인 향이죠. 이곳을 처음에는 카페로 운영하려고 한 게 아니기 때문에 메뉴를 많이 준비하지 않았어요. 근데 군항제 때 라떼 음료를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찾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특색 있는 버찌라떼도 메뉴에 넣었죠."

지역에서 희소한 아트 상품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일까.

"재료도 사고 상품도 만들고 부가세 신고도 직접 하고…. 회계나 이런 부분은 제가 세무회계 전공해서 어려운 부분은 없었어요. 금액이 큰 것도 아니었고요. 그림만 그리다가 그림을 상품화해야 하니까 공장 찾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원래는 이것(벚꽃 모양처럼 잘려진 나무 재료)도 그냥 동그란 나무인데 이 모양으로 잘라주는 공장 찾는 게 힘들었어요. 머그컵이나 다양한 상품을 만들다 보니까 그만큼 다양한 공장을 찾아야 하니까요. 전에는 나무 제작을 부산에서 하다가 다행히 진해에 있는 공장을 찾았어요. 다른 제품은 인터넷 통해서 하는데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가게 문을 대신 열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마음은 대구나 서울에 찾아가서 만나서 일을 진행하고 싶은데 모든 걸 전화나 메시지로 해야 하죠."

123.jpg
▲ 공간 곳곳이 벚꽃을 활용한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는 버찌이야기 2층 모습. / 서정인 기자

봄기운 돌면 앞다투어 찾는 벚꽃 상품, 진해 소재로 한 다른 상품도 개발 중

벚꽃 상품은 어디에서 구입할 수 있을까.

"이곳 여좌천 버찌이야기에서 상품을 구매하실 수 있고, 진해 제황산 모노레일카 매표소 옆 '행복한 가게'에서도 버찌이야기 상품을 팔고 있어요. 군항제 때 팔리는 수량이 많고 평소에는 드문드문 팔려요.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불티나게 팔리죠."

2017년에는 진해시 추천으로 창원 컨벤션센터에 있는 경남관광기념품점에도 입점했다. 벚꽃 상품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들이다. 그래서 요즘 많이 열리는 프리마켓에도 서 대표는 나가지 않는다.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층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프리마켓을 나가려면 진해에서 열리는 프리마켓에 나가야 하는데 진해에는 벚꽃이 흔하잖아요. 진해 시민들은 벚꽃 상품에 큰 관심이 없어요.(웃음) 그래서 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상품을 두고 있어요."

'벚꽃=봄'이다. 서 대표는 다른 계절도 아우를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

"벚꽃 이외에 진해를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고민 중이에요. 드라마 <로망스>에 나와서 유명해진 로망스다리도 굉장히 유명한데요. 그래서 이곳을 로망스거리라고 불러요. 로망스다리를 콘셉트로 준비 중이에요. 벚꽃캐릭터 '버찌양', '버찌군'도 계속 다양한 버전을 만들 생각이에요. 다양한 옷을 입힌 모습 같은 거요."

모든 상품이 그렇겠지만 특히 아트 상품에 대해서는 사람들 선호도가 다르다. 서 대표는 지금까지 판매한 상품 중 열쇠고리가 가장 많이 팔렸다고 했다.

"요즘 열쇠를 안 쓰니까 안 팔리겠거니 해도 젊은 분들이나 외국인 관광객분들이 많이 사시더라고요. 가방에 달거나 하시고요. 중장년층 이상 어른들은 꺼려 하세요. 무조건 실용적인 걸 더 좋아하시고요."

일일이 벚꽃과 캐릭터를 그려 만드는 열쇠고리는 들이는 품과 시간이 만만찮다.

"조금씩 미리 만들어놔야 군항제에서 판매하니까 작년하고 올해 제작한 열쇠고리만 2000개 정도예요. 하루 만에 완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 40개 제작하는데 하루에 2~3시간 작업해서 5일 정도 걸려요. 능률이 떨어지지만 저는 그래도 이 수작업을 고수해야겠고 주변 사람들은 너무 비능률적이라고 하고….(웃음) 그런 것 때문에 슬럼프도 왔다가 팔리는 걸 보고 만족했다가 반복하고 있죠."

123.jpg
▲ 제작 중인 벚꽃 열쇠고리와 버찌군 버찌양 캐릭터 열쇠고리./ 서정인 기자

지역 아트 상품 개발은 지역을 홍보하는 일

버찌이야기의 상품은 아트 상품 브랜드를 키우기 어려운 지역적 한계를 모두가 좋아하는 벚꽃이라는 이미지로 극복했다. 여기에 핸드메이드로 만들어낸 퀄리티, 거기에 공익적인 뜻이 담겼기에 많은 응원과 관심을 받았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지원 부분에서는 아쉬운 마음이 들 수 있겠다. 서 대표의 버찌이야기는 진해를 홍보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창원시 관광과에서도 몇 번 왔다 가고 진해시에서도 왔다 가고 하셨어요. 동사무소에서는 외국 지자체와 교류하는 일정에 선물용으로 제품을 사 가시더라고요. 근처 동장님은 외부에 손님들이 오신다고 기념품으로 사 가시고요. 그런데 상품이 연령대 따라 선호하는 게 많이 달라요. 머그컵은 실용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반면 열쇠고리는 실용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세요.(웃음) 공무원들도 그런 부분에 호불호가 갈리니까 잘한다고는 하시는데, 상품이 본인들이 사용하기에 실용적이고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크게 움직임은 없더라고요."(웃음)

서 대표는 버찌이야기 뿐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회 활동들로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카페 버찌이야기는 3월부터 4월 중순까지만 저녁 영업을 한다. 그 외에는 평일 10:00~17:00 동안 문을 열고 주말에도 쉰다.

123.jpg
▲ 서현란 버찌이야기 대표. /서정인 기자

"아침에 큰아이 학교 보내고 둘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빠르면 10시, 아니면 10시 반에 집을 나서요. 낮에는 사람들 만나고 얘기도 해야 하고 작업할 시간이 많이 없어요. 오후에는 5시 되면 애들이 오니까 가야 하는 거예요.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 남편도 같이 해보고 저녁까지 있어 봤는데 동네 자체가 조용하다 보니까 그사이에 매출이 많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어요. 손님들께는 죄송하지만 그 이후로는 문을 닫아야겠더라고요. 대신 군항제 때는 늦게까지 있고 여기에 더 집중하거든요. 이제 동네에 가게가 많이 들어서고 있는데 다 같이 오픈하자 이런 말이 나오니까 토요일에 문을 열어야 할 수도 있고요. (웃음)"

창업한 지 6년째, 서 대표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다. 무리하게 확장할 생각도 없고, 그래서 서두르지 않는다. 버찌이야기에서 벚꽃파우치 하나를 구입했다. 얇은 천이 아닌 튼튼한 재질에다 색이 예쁜 태슬이 달려 디자인이 산뜻하다. 쾌청한 가을이 지나가고 곧 아주 추운 벚꽃 전야가 올 거다. 벚꽃이 핀 여좌천도 멋지지만 그 여유로움을 즐기기에는 다른 계절도 제격일 듯하다. 여유로운 시간에 버찌이야기를 찾아 벚꽃라떼를 마시며 미리 봄을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