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 실전 교육 해주는 센터 운영해 보고 싶어"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선 많은 구성요소가 필요하다. 장소, 무대는 기본이고 기획·출연·연출팀 등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음향과 조명이 아닐까? 화려한 조명과 고품질 음향이야말로 행사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다. 경남에서 10년이 넘게 활동한 음향·조명렌탈업체가 있다. 바로 '빛과 소리'다. 이 빛과 소리를 진두지휘하는 이영철(45) 대표를 만나봤다.

음악과 함께한 학창시절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던 이 대표가 인사를 건넸다. 다부진 체격에 굵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학창 시절을 물어보자 '내성적이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굉장히 내성적이었습니다. 운동보다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악기도 배우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가르쳐 주는 곳이 없어서 교회를 찾아가기도 했죠. 경남대학교를 나왔는데 거기서도 음악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학창시절은 대부분 음악과 함께 보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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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철 빛과 소리 대표. / 박성훈 기자

이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레크레이션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10년 넘게 강사 생활을 하면서 음향·조명을 사용하니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지역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었습니다. 사실 레크레이션 강사는 대부분 마이크를 쓰고 조명 밑에 있잖아요. 관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죠. 각각의 상황에 어울릴 만한 소리, 조명 등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음향장비를 구입하고 독학을 했습니다."

위기 끝에 찾아온 빛과 소리

우연한 기회로 무대·음향·조명·특수효과까지 갖춘 한 회사를 만났다. 진행자가 필요했던 회사와 음향장비가 필요했던 이 대표는 동업을 결정했다. 그러다 창원대학교 축제에서 큰 음향사고가 났다. 이는 치명적이었고 회사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졌다.

"당시 저 포함 3명이서 동업을 했습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시너지 효과도 엄청났죠. 하지만 음향사고 한 번으로 치명타를 입게 됐습니다. 조명 빼고는 회사에 있던 모든 장비를 팔았습니다. 그때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죠. 3명이 모여 '이대로 무너질 순 없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사업을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죠. 다시 장비를 구입했습니다. 그때 회사명도 '빛과 소리'로 바꿨습니다. 당시가 2003년이었으니까 벌써 14년이 흘렀네요."

빛과 소리는 지난 14년간 1400여 회의 행사를 치렀을 정도로 업계에선 베테랑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힘들고 괴로웠던 적도 많았을 터. 이 대표에게 언제가 가장 힘들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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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향 장비를 만지고 있는 이영철 대표. / 이영철 제공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스트레스받는 건 없어요. 굳이 말하자면 경제적으로 좀 힘들죠. 매일 일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또 국가적으로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행사가 전면 차단됩니다. 그럴 때 말고는 힘들지 않습니다."

반대로 기뻤던 적은 언제였을까? '음향사고 후 다시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빛과 소리를 인정해 줬을 때' 등의 답변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큰돈을 벌거나 행사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한다는 걸 느꼈을 때가 기뻤어요. 예를 들어 저희 회사에서 일을 배웠던 친구들이 본인 회사를 차려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희 행사도 많이 뺏어갔습니다(웃음). 경쟁업체이긴 하지만 괜찮아요. 그만큼 빛과 소리도 성장했다는 의미죠. 또 후배가 열심히 하는데 선배로서 응원해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행사가 있는 날, 빛과 소리 직원들의 하루 일정이 궁금했다. 한 행사를 치르기 위해선 직원들 모두가 합심해 꼬박 이틀을 투자해야 했다.

"전날 오전 기획팀에게 전반적인 행사 프로그램 일지를 받고 짐을 꾸립니다. 트럭에 장비를 싣고 행사장으로 향합니다. 무대 설치에도 순서가 있어요. 우선 구조물이 먼저 서고 조명을 달죠. 구조물이 공중으로 올라가면 무대는 완성됩니다. 그다음 음향을 설치하고 의자가 깔리고 천막이 섭니다. 보통 전날 설치를 마치면 밤 12시가 넘어요. 행사 당일 오전 9시에 나와서 11시까지 준비합니다. 연출팀이 오면 음향·조명 등의 리허설을 합니다. 오후 1시에서 5시까지 출연팀 리허설을 하죠. 오후 6~7시 본 행사가 시작하고 10시쯤 끝이 납니다. 장비를 철수하고 집에 들어가면 밤 12시가 넘어요. 강행군이 따로 없죠(웃음)."

생각은 빠르게 하되 행동은 느리게

이처럼 완벽한 준비에도 항상 돌발 상황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전기가 나가기도 하고, 관객이 무대에 난입하기도 한다. 이에 대처하는 이 대표만의 노하우는 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무조건 빨리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럼 행동이 빨라지죠. 결국 허둥대고 주위에서도 굉장히 불안해합니다.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돌발 상황은 말 그대로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운 원칙이 '생각은 빠르게 하되 행동은 느리게 하자'입니다.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를 빨리 생각한 후 침착하게 움직이는 거죠. 그러면 대부분은 잘 해결됩니다.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 직원들에게도 계속 강조하는 것입니다."

직업 특성상 밤낮, 주말이 없고 성수기 때는 집에 못 들어가는 날이 허다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많이 안 힘든 편이에요. 음향장비들이 작아지고 가벼워졌으니까. 물론 성수기 때는 3주 정도 집에 못 들어갑니다. 또 육체 노동자니까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죠. 비수기 땐 지금보다 훨씬 여유롭죠. 그때를 생각하면 이만한 직업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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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향 장비를 만지고 있는 이영철 대표. / 이영철 제공

개인적으로 행사에서 음향·조명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작 이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행사 전체를 보면 음향·조명은 '조연 중의 조연'이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행사를 총괄하는 연출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과 장비가 필요합니다. 거기다 관계자, 내빈, 관객까지 있죠. 이들을 한 데 묶는 역할을 하는 게 연출팀이에요.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소통하게 해야 합니다. 일종의 지휘자 같은 역할이죠. 각자의 실력이 좋아도 자존심만 세우면 행사가 잘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연출팀이 중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최근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자체적으로 음향장비를 구비하는 개인·공연팀이 늘고 있다. 이에 자연스럽게 음향업계에 종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요즘은 음향에 관련된 학과도 많이 생겼어요. 사실 예전에는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우는 게 음향이었거든요. 진짜 발품 팔아서 배웠던 걸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니까 빠르게 배울 수 있죠. 교수진들을 보면 실무에 종사하는 분들이 반이고 소리를 공부한 학자들이 반이더라고요. 하지만 음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무예요. 음향은 현장에서 직접 소리를 듣고 익혀야 하거든요. 제가 경험해 보니까 관련 학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모두가 현장에서 뛰어나진 않더라고요. 진짜 음향업계에 종사하고 싶다면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배우는 게 현명할 것 같아요."

이 대표는 경남에서 이뤄지는 음향업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지자체에서 행사를 개최하면 음향·조명의 입찰 기준을 대형 음향사가 구비한 장비에 맞추기 때문에 소형 음향사는 발조차 들일 수 없다고 한다.

"빛과 소리는 다른 곳에 비하면 큰 음향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회사에 실력이 뒤진다곤 생각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행사의 입찰 기준을 보면 소형 음향사들이 수주받기엔 불가능한 형태죠. 이렇게 되면 경남지역 음향업계 수준이 낙후될 수밖에 없어요. 공정한 경쟁을 통해 기술 수준이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죠. 다른 지역은 아무리 작은 음향사라도 실력만 있다면 행사를 수주받을 수 있죠. 하루빨리 변화가 필요합니다."

인터넷에 '창원음향렌탈'이라고 검색만 해도 10여 개가 넘는 회사가 나온다. 이들과 차별화되는 빛과 소리만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빛과 소리는 뮤지션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공연팀과 음향팀은 무대 전까지 계속해서 소통하고 노력해야 해요. 아마추어분들은 음향에 불만이 있어도 말을 안 하세요. 저는 음향이라는 악기로 뮤지션들과 합주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저런 요구를 한다고 절대 귀찮아하지 않습니다. 조율을 통해 좋은 무대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죠."

그렇다면 빛과 소리가 연출팀이나 공연팀에게 바라는 건 무엇일까? 이 대표는 '충분한 리허설 시간 확보'와 '사전 협의'를 부탁했다.

"저희는 현장에 약속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갑니다. 최대한 많은 분들과 리허설을 해보기 위해서죠. 하지만 행사라는 게 일정대로 안 될 때도 있거든요. 저희는 크게 상관없지만 공연팀은 리허설을 해보지 않으면 많이 불안해해요. 해서 연출팀이 리허설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또 뮤지션들이 자체적으로 공연을 할 때가 있거든요. 음향 요청이 오면 연습실도 가보곤 합니다. 어떤 성량을 가지고 연습을 하는지, 어떤 곡을 부르는지 미리 알면 그에 따른 준비를 하거든요. 이런 사전 협의가 있으면 더욱 수준 높은 공연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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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철 빛과 소리 대표. / 박성훈 기자

"음향 실전 교육해주는 센터 운영해 보고 싶어"

이 대표의 최종 꿈이 궁금했다. '음향렌탈업계 1위' 같은 답변을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음향에 대해 이론이 아닌 실전 교육을 해주는 센터를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지역에서는 음향을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요. 지역에서 교육하고 인재를 배출한다면 인력난도 해결되고 음향 수준도 훨씬 더 발전하지 않을까요?"

인터뷰는 끝이 났다. 다음 일정을 위해 이 대표는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레크레이션 강사부터 음향·조명 렌탈회사까지 정말 바쁘게 살아온 것 같아요.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힘든 적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죠. 그렇지만 저를 잡아주고 지금까지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붙잡아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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