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경제규모에 비해 문화·예술 지원 최하위"

경남도는 인구 337만 명, 13개의 광역자치단체 중 경기·서울·부산을 이어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GRDP(지역내총생산) 역시 2015년 기준 경기·서울·충남을 이은 네 번째. 인구도 많고 경제력도 우수한, 일견 부족할 것 없는, 남 부럽지 않은 환경이다. 하지만 경남도의 문화·예술 분야의 상황은 빈말로도 좋다 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아이러니다. 문화·예술보다는 먹고 사는 게 더 급하지 않으냐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경남보다 인구 적고 못 사는 지역들이 문화예술 분야에 힘 쏟고 있다"는 말에는 대꾸할 말이 궁색하다. 문화예술이 사치로 느껴지던 힘겨운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은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이성주(62) 원장은 "경남도민들은 더 나은 수준의 문화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도 문화예술을 전담하는 진흥원의 수장을 맡은 이 원장을 만나, 경남도 문화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물어봤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하 진흥원)을 방문하기 위해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에 있는 경남발전연구원을 찾았다. 경남발전연구원 건물 3층이 진흥원 사무실이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각자의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직원들이 보인다. 하지만 진흥원 청사 합천 이전을 며칠 앞둔 상황 때문인지 어딘가 부산하다는 분위기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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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주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원장. / 이종현 기자

지역사회에서는 진흥원의 합천 이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창원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많은 상황에서 청사가 이전되며 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김우태 문화정책부장은 "진흥원의 합천 이전은 이미 1년 전부터 예고됐던 거기에 대부분 준비를 마쳤다. 공사도 끝났고, 23일 이전하면서 시설·집기만 정비하면 된다"며, "합천 이전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 잘 알고 있다. 원장님께서도 말씀해 주시겠지만, 서비스 제공에 결손 없도록,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40년간 공직 생활 지낸 문화예술진흥원 원장

원장실 문턱을 넘어 이 원장을 보고 떠올린 건 '문화예술인 같다'는 생각이었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나, 시인이나 영화인들 한가운데 있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그의 첫인상이었다. 자연스레 '문화예술 쪽을 전공한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이 나왔다.

"문화예술 분야를 전공하진 않았습니다. 1974년부터 40년간 공직에 있었습니다. 경남도청 서울사무소장, 공보관, 행정과장 등, 대부분 경남도청에 있었죠. 경남도를 벗어나서는 함안 부군수, 창원시 기획홍보실장, 진해구청장을 지냈습니다."

과거 공직 중 맡았던 업무를 보더라도 문화예술과는 접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문화예술 콘텐츠의 소비자'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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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포로수용소 VR체험 개발. /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문화예술 분야는 이전부터 좋아하고, 관심 가지던 분야입니다. 창작자나 그 관계자가 아닌 소비자로서요. 진흥원장 공개모집을 보고, 제 40년 공직 경험이 진흥원의 운영·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겠다 싶어 지원했습니다."

이 원장의 임명에 '문화예술 분야 비전문가'라는 데 대한 우려도 있었고 그 역시 이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진흥원장이란 자리는 조직을 이끌어가는 자리입니다.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전문성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조직 관리나 경영에 대한 지식·경험이죠. 진흥원에는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 전문가들의 목소릴 듣고, 그걸 실천하기 위해 더 효율·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거죠. 진흥원에 있는 전문가들의 식견에 제 소비자로의 시각을 더해, 공직생활을 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도 문화예술 분야 전담하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진흥원은 경상남도의 출연기관이다. 이사장은 조례에 따라 도지사가 맡고, 원장은 공개모집을 통해 도지사가 임명한다. 경남지역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지원·육성을 맡는다.

"진흥원의 사업 영역은 무척 넓습니다. 지역문화예술육성 지원, 차세대 유망예술인 지원 등의 창작 지원부터 문화콘텐츠산업 육성, 문화예술 교육 지원, 도내 문화 향유권 신장, 문화복지사업, 문화정책기반 강화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도의 문화예술 분야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기획관리부, 시설관리부, 문화정책부, 문화사업부, 콘텐츠영상사업부,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등 6개 부서가 각자의 역할을 이행한다.

"진흥원 주관으로 이뤄지는 사업이 많습니다. 때로는 행사에 참여하는 문화예술인이나 도민도 '진흥원이 진행한 건지 몰랐다'고 하는데요. 저희 활동이 조금 더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어디까지나 조연이고, 주인공은 문화예술인들과 도민분들이라는 걸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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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청사조감도. /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진흥원. 하지만 지원을 요청하는 모든 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동시에 지원이 필요한 모든 문화예술 관계자가 지원을 신청하지는 않을 터다.

"진흥원의 사업 대부분은 공모사업입니다. 사업의 종류가 많고 각기 추진방식이 다르다 보니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매년 1월경 통합사업설명회를 진행하고 있고, 사업단위별 공고와 개별성명회도 하고 있습니다. 각종 간담회, 홈페이지, 소식지, SNS 등을 통해서도 알리고 있는데, 앞으로는 SNS를 통한 홍보 활동을 더 늘릴 계획입니다."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또 지원한다. 한편으로는 '이만큼의 사업을 다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이 편성되어 있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필요한 예산 등은 어디서 마련할까.

"진흥원의 사업은 대부분이 국비와 지방비를 매칭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모사업의 경우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합니다. 저희 단독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건 아닙니다. 지원하시는 문화예술인들은 물론이고 경남도와 도내 시·군, 문화체육관광부 등 문화예술 분야와 관련된 모든 기관과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합천 이전, 우려와 기대 속 새 출발

11월 23일, 진흥원이 창원에서 합천으로 이전한다.

"그간 진흥원은 경남발전연구원의 한 층을 사용하는, 독립된 청사를 갖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제는 공연장, 세미나실, 창작공간, 숙박시설 등을 갖추게 된 겁니다. 이전에는 규모의 한계로 진행하지 못했던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기회가 왔으니 잘 활용하도록 해야죠."

합천으로의 이전은 갑작스레 정해진 건 아니다. 이미 지난해에 예고된 사항이다. 하지만 이전에 대해서는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이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는데요. 지역균형발전 촉진, 진흥원 자체 청사 소유로 인해 독자적인 프로그램 개발·운영이 가능한 것 등을 장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내 문화예술인의 80% 가까이가 도시에 거주한다는 점에서 진흥원과 문화예술인들의 물리적 거리가 늘어난다는 건 분명한 단점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게 당면한 과제입니다."

이 원장은 진흥원 이전에 대한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온라인 서비스 강화와 창원의 스마트위크센터 운용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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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주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원장. / 이종현 기자

"접근성이 낮아진다는 게 페널티라면, 오히려 접근성을 늘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진흥원의 모든 공모사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해, 직접 오가지 않아도 되도록 할 예정입니다. 물론 모든 절차를 온라인화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공모사업 심사나 회의 등, 오프라인으로 해야 하는 일은 창원 팔용동에 소재한 문화대장간 풀무 내의 스마트위크센터를 설치하는 등, 불편을 줄이는 방안을 고려 중입니다."

문화예술이나 교통 등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도 합천 이전의 단점으로 손꼽힌다.

"저희가 자체적으로 하는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합천군과 대중교통 노선을 증설하고 주변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등의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도심형 거점기반 시설을 확충해, 진흥원의 조직 확대와 각 지역에의 접근성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노리고자 합니다."

문화예술 불모지 경상남도

진흥원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경남도는 여전히 타 지역에 비해 문화예술 분야 사업과 지원이 열악한 지역이다. 자연히 진흥원에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련 공공기관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결과라는 거다.

"진흥원이 통합 출범한 지 4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기간 진흥원이 경남지역 문화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기관으로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데,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 하는 게 현실입니다. 진흥원 구성원 모두가 연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적극적이게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고 싶지만, 한정된 예산과 권한이라는 현실에 부닥칩니다."

국비, 지방비를 통해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자체 예산이 아예 안 드는 건 아니다. 진흥원의 경우 여타 지역의 문화예술 기관에 비해 예산이나 권한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예산이나 조직의 규모 등을 고려하면 경남도는 평균 이상의 경쟁력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예산은 전국 최하위 수준이에요. 단순히 돈을 쓴다고 해서 문화예술이 성장한다곤 할 수 없지만, 그 정도가 심각합니다. 창작을 지원하는 창작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문화예술인들이 타 지역으로 가게 됩니다. 문화예술에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에요. 문화예술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급자가 떠나는 것은 장기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실제 인근 도시 부산은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 사업을 통해 문화예술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에 있는 '부산문화콘텐츠콤플렉스(BCC)'에서는 부산지역뿐만 아니라 경남·울산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모집해 지원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건물은 금방 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예술인을 육성하는 데는 한참이나 걸립니다. 지역 인재의 역외유출이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가, 문화예술 관련으로 취업할 직장이 도내에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활동하기도 좋은 환경이 아니고요. 이런 측면에서 부산은 배울 게 많은 도시입니다. 경남, 울산보다 10년은 먼저 투자를 시작했죠."

이 원장은 "인재 육성과 함께 문화예술인들이 지역 내에서 일할 곳을 만드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한다.

"인재의 중요성은 제가 말하지 않더라도 다들 알 겁니다. 결국은 문화예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고, 진흥원이 목표로 해야 하는 것도 이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예산으로는 많은 한계가 있어요. 예산이 부족하더라도 하다못해 권한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지금의 진흥원은 자체적으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권한조차 없어요. 도에 사업을 설명하고, 예산을 요청하고. 그걸 도에서 손본 뒤 다시 도의회로 가고. 감사를 받는 것이 부당하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희가 직접 도의회에 예산을 요청하고, 직접 사업을 설명하며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합니다. 지난 7월, 도의회 문화복지위원들을 모시고 부산문화콘텐츠 콤플렉스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인근 부산의 앞선 투자와 우리 경남의 현실을 실감하는 현장이었고 도의원님들께서도 잘 이해하시는 분위기였습니다. 앞으로 우리 진흥원이 계획하는 일들이 도의회 차원에서 적극적인 협조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문화가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시대

국가, 지역이나 각자의 문화를 갖추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옆 도시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 지스타 등의 행사를 통해 국제적인 인지도를 가지게 됐고, 이는 곧 지역의 경쟁력으로 발휘되고 있다.

"과거 보릿고개 시절에야 다들 먹고살기 힘들어, '문화예술이라는 건 가진 자들이나 즐기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어요. 경제난이라곤 하지만 다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는 등,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 콘텐츠를 즐기고 있습니다. 잘 닦인 도로, 높다란 건물, 번쩍거리는 번화가가 지역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기는 지났어요. 이제는 문화가 곧 경쟁력입니다."

문화예술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원장.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문화예술 육성을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부산이 잘하는 것을 지금부터 따라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상생협력 차원에서, 부산이 하지 못하는 영역을 경남이 집중해서 육성했으면 합니다. 타 지역이 앞선 부분은 중복 투자가 되지 않도록 상호 존중하며, 지역 특화 전략을 짠다면 우리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타 지역이 하는 것은 우리 지역에 맡게 벤치마킹하는 노력이 필요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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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주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원장. / 이종현 기자

진흥원이 경남 문화예술의 컨트롤타워가 돼야

이 원장은 현재의 진흥원이 경남도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맡은 역할에 비해 주어진 예산과 권한이 한참이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진흥원이 경남 문화예술의 컨트롤타워 격의 역할을 맡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진 않았습니다. 그간 진흥원이 중앙정부나 경남도의 공모사업비 심사를 거쳐 분배하는, 소극적인 업무만 볼 수밖에 없었던 건 그 때문이죠. 합천 청사로 진흥원의 외연이 확대된 만큼 앞으로는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예정입니다. 자체적인 문화예술 콘텐츠 사업을 진행하고, 지역 내 문화예술 기관들과의 네트워크를 협력도록 하겠습니다."

진흥원에 온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탄핵과 도지사 부재로 인한 권한대행에게의 임명 등. 순탄치 않은 활동을 이어온 이 원장. 그는 당장 직면한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했으니, 앞으로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내년 상반기 중에 중장기발전계획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내년이면 새롭게 취임하게 될 이사장께 우리 경남의 문화예술 발전과 진흥원의 장래 문제를 건의 드려, 중·장기적인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겠습니다. 1인당 GRDP 기준으로 우리 경남은 전국에서 4위 수준의 잘사는 지역입니다. 하지만 인구가 적고 GRDP가 낮은 지역들의 문화 수준이 우리 도보다 낮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문화적 수준은 오히려 경남이 최하위권입니다. 우리 경남은 문화예술적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간의 투자와 노력, 관심이 부족했습니다. 경제적인 부에 더해 문화의 향기를 입히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방향일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 활동하고 있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말도 빼놓지 않았다.

"문화예술의 소비자로서, 창작자분들께는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창작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으신 데 대해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진흥원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분들의 든든한 후원기관이 되겠습니다. 함께 우리가 사는 이 지역을 아름답고 행복한 문화예술의 도로 만들어나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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