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맞벌이 증빙서류 안돼
글쓰기 위해선 알바뛰기 필수
노동 인정 못받는 '창작' 서글퍼

내년 아이들 어린이집 입소를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 맞벌이 증빙 서류에서 발목이 잡힌 것이다. 4대 보험에 가입되어있거나, 하루 4시간 이상의 일을 했다는 확인서류가 필요하다고 했다. 프리랜서는 갖추기 힘든 조건이다.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내가 쓴 글을 첨부하면 되지 않을까?' 작가에게 글만큼 결정적인 증빙자료가 어디 있냐는 순진한 생각에서다. 대답은 당연히 'NO'.

여성가족부에 문의했다. 프리랜서라도 재직기관 증명서와 고용임금확인서가 있다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행히 정기적으로 글을 싣는 업체에서 서류를 뗄 수 있었다.

격월로 돈이 들어온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통장사본도 챙겼다. 만약 내가 집에서 언제 공연될지 모르는 아동극을 쓰고 어디에도 실리지 못할 시를 썼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게 작가의 일이라고 믿지만 사회에서 말하는 노동이 아니었다.

어린이집에 서류를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 여러 의문이 들었다. 과연 작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인가. 적어도 노동자로 존재하는 걸까?

물론 이름난 작가는 다르다.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김은숙'이나 '김영하' 같은 작가는 1퍼센트에 속한다.

무명작가는 언제까지 유명작가 지망생으로 살아야 할까. 내가 졸업한 예술대학에선 유명해지면 연락이 온다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무명 개그맨이었던 선배가 인기를 실감한 순간은 <학교를 빛낸 사람들>에 이름을 올리겠다고 연락이 온 때였다.

많은 예술가는 당장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오랫동안 창작을 이어간다는 건 고행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작품을 쓰기 위해 필연적으로 알바를 한다. 꾸역꾸역 살기 위해 일을 하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몇 년 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나도 신청을 했다. 집으로 날아온 '예술인패스카드'라는 것에는 "당신의 열정이 문화꽃을 피웁니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지금까지 그 카드의 쓰임은 단 하나, 도립미술관 500원 할인. 그뿐이다. 심지어 이 글을 쓰기 위해 지갑에서 꺼낸 카드에는 유효기간이 있었다. 2017년 12월 31일. 아쉽게도 나는 올해까지만 나라가 인정한 예술인이다.

해마다 국내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른다. 그리고 매해 복사한 것 같은 후속 기사가 쏟아진다. 한국에선 왜 노벨상이 나올 수 없는지에 대한 분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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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조적으로 예술가를 위한 복지정책에는 냉소적인 시선이 쏟아진다. '예술은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 '예술은 나와 다른 세상'이라는 외면. 흔히 말하는 '잘 먹고 잘살자'는 말 속에서 예술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어디 위치하긴 한 걸까.

예술가의 창작이 노동으로도 인정받기 힘든 현실이 서글프다. 예술가는 밥을 굶고서도 살아가는 신이 아니며, 매일 기행을 저지르는 별난 사람도 아니다.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이며, 노동자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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