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대응 과정 민낯 고스란히 드러나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 대한민국

뜰에 가득 차가운 비 내려

물가에 온통 가을인데

제 땅 얻어 종횡으로 마음껏 다니누나

창자 없는 게가 참으로 부럽도다

한평생 창자 끊는 시름을 모른다네

'게'를 즐겨 그리던 근원 선생이 게 한 마리를 일 같잖게 스윽 스윽 그리곤 그 곁에 '화제'로 갖다 쓰던 것이 위의 저 시라. '게'는 창자가 없으니 단장의 아픔 또한 모를 것이란 소리인바 그 말의 근원을 따져 올라가 보니 가슴이 저민다. "옛날 진나라 아무개 장군이 배를 타고 협곡을 건널 때 그의 하인이 원숭이 새끼를 잡아 배에 태우자 그 어미가 슬피 울며 기슭을 따라 내려오다가 끝내 배 안으로 뛰어내려 죽고 말았는데 그 배를 갈라보니 장이 조각조각 끊어져 있었더라."ㅠㅠ

끝내 돌아오지 못한 다섯 명의 세월호 가족들은 수습된 유품이나마 태워 장례를 치렀다. 한 점 육신의 흔적이라도 찾아 보듬어보고 울어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삭아 바슬거리는 배를 끌어올려 켜켜이 쌓인 진창을 뒤지는 그 처참한 작업이 그들인들 편했을 리 없었을 터. 그걸 돈으로 환산하며 수군거리는 소리는 더 낮고 뾰족하게 가쇄가 되어 조여 왔을 것이다.

"죄에 빠진 우리나라 국민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이들을 제물로 삼아 세월호를 침몰시켰다"라 설교했던 목사가 있었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허언이지만 그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우리 공동체에 던진 충격파의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 일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정도를 측정하는 리트머스가 되어 사람들의 가슴을 비췄다. 생때같은 자식이 물에 잠기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꼴을 지켜본 부모들이 환장을 하여 날밤을 새울 때부터 확연히 그랬다. 

권력자들은 분주히 항구를 드나드는 모양새만 보였을 뿐 졸지에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감정을 헤아리는 진심은 없었다. 그들은 "현장 책임자만 잘 임명했으면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7시간 동안 놀아도 된다.",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라 했다. 그걸 증명하려는 듯 배의 실소유주로 지목한 노인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경찰뿐 아니라 육해공군을 동원해 수색하느니 법석을 떨며 국민의 눈길을 오도했다. 

사고원인을 규명하라는 처절한 단식현장 곁에서 치킨과 피자를 뜯어 먹으며 조롱하는 아이들도 보았다.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하소에다 대놓고 "수학여행 가다가 생긴 사건에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해 달라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사망자들이 수억 원의 보험금을 받는다"라며 유가족을 모욕했다. 곡절 끝에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으나 갖은 방법으로 조사위원의 활동을 방해했으며 여당 추천의 위원들은 걸핏하면 사퇴를 들먹이며 특조위를 분탕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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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태웠던 그 연대의 불꽃을 지핀 발화점은 세월호였다. 촛불은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동시대인의 책무가 낳은 놀라운 공감의 반향이었다. 그 처절한 텐트에서 함께 굶으며 참척의 심사에 공감했던 그이는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고 통한의 '특별법'은 발의 330일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포항 지진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 뒤에 어른거리는 세월호를 본다. 

이 나라는 이제 확연히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구분지게 되었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장례를 치른 가족 분들께 깊은 위로와 함께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울러,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걸 두려워하여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수정안'에 반대한 자유한국당 45명, 바른정당 1명의 이름은 외고 펴고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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