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 휴양지로 유명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
차 빌려 숙소까지 운전 "신들의 정원같은 곳"

가을비가 내릴 때마다 기온이 떨어지더니 톡톡한 외투가 필요한 계절로 들어섰다. 숨을 내쉴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섞여 들어온다. 찬 바람에 새겨진 기억을 더듬어보니 먼 이국 땅에서 보낸 겨울이 떠오른다. 남부 이탈리아, 황량하고 아름다웠던 그때의 설렘이 지중해의 파도처럼 가슴 가득히 밀려온다.

올해 1월, 크리스마스 훨씬 전부터 출국해 프랑스에 홀로 머무는 친한 언니를 만나러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원래 계획은 함께 프랑스 남부를 여행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갈 때쯤엔 (추워지는 날씨만큼 언니가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이미 언니가 남부 지역 대부분을 돌고 난 뒤였다. 우리는 그쪽으로 다시 갈지 말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첫 5일은 파리에 머무르며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았는데 하필 그때 유럽을 덮쳤던 기록적인 한파로 셋째 날에는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숙소에 있는 라디에이터는 젖은 수건을 말리거나 다음날 마실 배즙을 데워놓는 정도밖에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전기장판을 챙기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허공에 맴돌았다. 엄마가 지나치는 줄만 알았는데 그냥 실수로라도 챙겼으면 좋았을걸. 정말이지 프랑스는 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추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를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프랑스에서 가깝고 프랑스보다 따뜻한 나라'였다.

아름다운 지중해 풍경.

◇추운 프랑스를 떠나 따뜻한 이탈리아로

게스트하우스의 외국인 친구와 여행 후보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한 친구가 이런 제안을 했다.

"이탈리아 남쪽은 어때?"

이탈리아, 그 말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 평생 이렇게나 계획에도 없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너무 멋진 일이라 정신이 아득해졌다. 몽마르트르의 카페에서 점심을 먹으며 언니와 나는 사흘 뒤 이탈리아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그곳에서 렌터카로 남부 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오를리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라 숙소도 그 근처 빌르눼브 르 루아(Villeneuve-le-Roi)에 있는 에어비앤비(Airbnb·2008년 8월 시작된 세계 최대 숙박 공유 서비스)로 예약을 했다. 언니와 나는 헬렌과 그의 강아지, 고양이들과 이틀 동안 센 강 바로 옆에서 지내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누렸다. 

1월 18일 수요일 새벽 다섯 시 반. 감사하게도 친구가 오를리 공항까지 데려다 줘서 여유롭게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로컬(현지인)들의 휴양지'라는 말답게 동양인은 언니와 나밖에 없었다. 이륙할 때만 하더라도 파리에는 궂은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물의 기다란 흔적이 그대로 창문에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다. 감기에 걸린 날부터 편도선이 부어있었는데 아침이다 보니 더욱 부풀어 있었다. 기내에서 간식이라도 챙겨줄 줄 알고 그냥 왔는데 순진한 생각이었다. 비행기는 한 시간 반 정도 날아가더니 오전 9시 20분쯤 우리가 머물 레조디 칼라브리아(Reggio di Calabria)로 내려앉았다.

◇협상 끝에 겨우 소형차를 빌리다

렌터카 가게가 문을 열 때까지 공항 안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시간이 되어서 밖으로 나왔는데, 프랑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햇볕과 화창한 날씨가 눈앞으로 펼쳐졌다. 이탈리아는 마치 프랑스가 아닌 자기가 우리의 원래 목적지였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였다.

우리가 간 곳에는 여러 렌터카 업체가 모여 있었다. 금방 문을 열어서 그런지 자리가 비어 있는 업체도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에 가장 일할 준비가 되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로 갔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직원이라 언니의 이탈리아어와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렌터카 업체 직원들.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를 잘 마치고 이 분들께 내 사진엽서를 선물로 드렸다.

우리는 결국 9인용 리무진밖에 없다고 우기는 걸 끈질기게 되물어서 피아트 500(이탈리아 최대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가 만든 소형차)을 쟁취했다. 13일을 빌리는 데에 400유로 정도 했다. 보험도 잘 들어놓고 이 나라의 하이패스 단말기도 함께 빌렸다. 피아트 500은 기어를 왼쪽으로 두 번 툭툭 당기면 오토로 주행이 가능한 설정으로 변한다.

◇신의 정원 같은 풍경들

숙소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당장은 음악을 연결할 수가 없어서 라디오를 틀어 놓았는데 하필이면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는 콜드플레이(영국 출신 얼터너티브 록 밴드)의 음악이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볼륨을 높이고 언니는 속력을 더 냈다. 눈앞의 나지막한 산에는 그려놓은 것 같은 집들이 박혀 있었고, 하늘에는 구름이 솜털처럼 공중에 부착되어 있었다. 추위로 벌벌 떨던 프랑스도 그토록 아름다웠는데, 햇살을 잔뜩 품은 남쪽 나라의 풍경은 이 세상을 초월해 존재하는 신들의 커다란 정원 같았다.

이탈리아 숙소 앞 풍경.

내비게이션을 켜 놓아도 일방통행 도로에 익숙하지 못한 데다가 워낙 현지인들의 운전이 거칠어서 겨우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 숙소는 상업적인 느낌이 훨씬 강한 공간이었다. 검은 뿔테 안경과 북실거리는 턱수염을 가진 호스트는 대리석 바닥과 높은 천장이 있는 방을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시설이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천장에는 천사가 우리를 내려다보는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3층이라 창문을 여니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글·사진 시민기자 박채린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