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이의 향기]마산 창동서 46년간 헌책 수집·판매…급성심장마비로 23일 별세, 서점 이어받을 사람 마땅찮아

46년간 헌책 사랑을 실천한 영록서점 박희찬 대표가 지난 23일 별세했다. 향년 63세.

박 대표는 일평생을 헌책과 함께했다. 출판시장의 침체는 물론 온라인·모바일쇼핑의 발달로 오프라인서점을 보기 어려워진 요즘이지만 박 대표는 꿋꿋이 헌책방을 운영하며 120여만 권의 책을 보관해왔다. 그랬던 그가 지난 23일 급성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박 씨가 헌책을 팔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를 중퇴한 16살 때다. 길을 걷다가 책을 깔아놓고 파는 좌판을 보고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 길로 고물수집상에서 헌책을 사다가 손수레에 싣고 길에서 팔았다. 2년 후에는 부산에 처음으로 가게를 열었다. 군 제대 후 부산 서면에 '비실비실서점'이란 간판을 걸고 두 번째 가게를 열었고 2~3년이 흐르고서 공간을 넓혀 '유림서점'을 냈다.

439686_336486_5348.jpg
▲ 고 박희찬 영록서점 대표./경남도민일보DB

개인사를 정리하면서 박 대표는 1987년 창원(마산)에 안착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부산이었지만 아버지의 고향은 마산이었기 때문에 할아버지·할머니 등 친척들이 있는 친숙한 동네였다. 영록서점은 창동예술촌에 자리 잡기 전까지 네 번 이사를 거쳤다. 처음에는 팔용교육단지에서 시작해 마산 신세계백화점 앞으로 옮겼다가 마산자유무역지역, 또 석전시장 앞으로 옮겼었다.

건강했던 박 대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영록서점도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그에게는 상속자가 없기 때문이다. 28일 현재, 영록서점 인터넷 누리집에는 '영록서점 주문이 잠정 중단됩니다'라는 알림글이 공지됐다. "영록서점 대표 부고로 쇼핑몰 주문을 잠정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쇼핑몰 재오픈 향방은 차후 유족의 의견을 반영하여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 대표의 맏형인 박희영(70) 씨는 영록서점을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박 씨는 "유족 측에서는 영록서점을 인수받을 여건도 안 되고 지식도 부족하다. 현재 보관 중인 책은 모두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도 영록서점이 이대로 문 닫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귀한 책도 많아 인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인계하고 싶다. 또 책방이 박물관화 된다면 박 대표가 가장 원했던 일이라 유족들이 가장 원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평소 박 대표를 자주 만났던 이승기 전 마산문화원 영화자료관장은 "책 수집뿐 아니라 문화·예술분야와 관련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수집에 나섰던 이가 없었는데 세상을 떠나게 돼 안타까운 심정으로 애도한다"고 말했다. 임영주 마산문화원장은 "문화적 자산을 수집하는 데 있어 열심히였던 지역 보배가 세상을 떠 안타깝게 생각한다. 도서 중 문화적 가치가 있는 책들이 있다면 마산문화원이 역할을 해보겠다"고 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