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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주의 작은 영화] (8) 파울라

서양 미술사 첫 '누드 자화상' 그린 화가
그 과정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당당히 자기자신을 찾고 드러내는 '저항'이었다

시민기자 조정주(진주시민미디어센터) webmaster@idomin.com 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 발가벗어야 하는가?"

미국 뉴욕에 거점을 둔 행동주의 아티스트 그룹 '게릴라걸스(GUERRILLA GIRLS)'가 사람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들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를 패러디한, 여성의 몸에 화난 고릴라의 얼굴을 단 그림을 함께 넣은 포스터도 제작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현대미술 부문에 작품이 걸린 작가들 중 오직 5%만이 여성이지만, 누드 작품의 85%가 여성인 것을 꼬집기 위해서였다. 1989년에 그들이 주장한 수치는 지난 2012년 '4%의 여성작가', '76%의 여성 누드모델'로 업데이트되었다.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서 여성의 창작은 지워지고, 소비와 소유의 이미지로 전락한 것에 저항하려는 게릴라걸스의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 <파울라> 포스터. /<파올라>

게릴라걸스는 2004년 라는 책을 펴냈다. 르네상스의 거장 틴토레토의 딸 마리아 로부스티, 잭슨 폴록의 아내인 추상표현주의 화가 리 크래스너 등 잊혔거나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2010년 <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올가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파울라>(감독 크리스찬 슈뵈초브)도 역사가 묻어둔 여성 예술가를 소개한다. 주인공인 '파울라 모더존 베커'는 여성의 운명과 모성에 대한 생각을 단순화된 형태와 절제된 색채로 표현한 독일 화가다. 그녀는 '피카소, 마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장', '진정한 여성의 모습을 그려낸 예술가'라는 평을 받는다고 한다.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 발가벗어야 하는가?" 남성 중심 미술사에 던지는 게릴라걸스의 물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게릴라걸스 홈페이지

영화 속 파울라는 독일의 예술가 공동체 보릅스베데에서 화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정밀한 묘사가 주를 이루던 당시에 자신의 시각으로 사물을 투박하게 묘사하는 그녀의 그림은 생소한 스타일이었다. 다른 화풍의 그림을 그려서 인정받지 못하는 그녀는 여성이라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영화가 보여주는 보릅스베데 공동체는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화 초입, 공동체서 작품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을 보여주는 화면에서 여성들은 남성 화가 옆에서 팔레트를 들고 있거나 남성 화가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그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 파울라에게 '여성은 출산 외에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소리치는 부분에서는 절로 한숨이 나온다. 화가이지만 남편의 창작활동을 돕는 아내로 있어야 했던 보릅스베데를 견딜 수 없었던 파울라는 결국 파리로 향한다.

"이제 어떻게 서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더는 모더존이 아니고 파울라 베커도 아닙니다. 저는 저입니다. 그리고 점점 더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파울라>에 나온 누드 자화상. /<파울라>

파리로 떠나며 릴케에게 보낸 편지에서처럼 그녀는 파리에서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길 바랐다.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는 것,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은 비단 파울라만의 꿈은 아니었다. 파울라의 절친한 친구 클라라는 보릅스베데에서 같이 작업을 하는 동료이자 친구였다. 릴케와의 결혼 후 파리로 온 클라라는 생계 유지를 위해 로댕의 작업실에서 회반죽을 주무르고 있었다. 조각가인 클라라가 작품활동을 하지 못하는 서글픈 현실은 파울라가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술잔을 나누는 펍에서 누군가 뛰쳐 들어온다. 헝클어진 머리로 조각을 안은 카미유 클로델이다. 펍에는 재능을 가진 여성 예술가들이 내뱉은 한탄이 가득하고, 그 쓸쓸함은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까지 전달된다.

영화 오프닝에서 파울라는 캔버스를 세워 들고 소파에 앉아 있다. 맞은 편에 앉은 남성은 파울라에게 결혼을 하라고, 남편 허락하에 그림을 그리라고 조언(아닌 조언)을 한다. 파울라는 캔버스를 뒷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그러다 여자는 화가가 될 수 없다는 소리에 캔버스를 내리며 "아무리 그러셔도 할 거예요"라고 당차게 말한다. 그런 파울라는 영화 마지막에 캔버스 앞면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캔버스 뒤쪽에서 등장한다. 이때 나오는 그림이 'Selt-Portrait on her sixth wedding Anniversary'(1906)이다. 부른 배를 손으로 받치고 상반신을 탈의한 그림 속 파울라에게서는 자신의 몸과 재능에 대한 긍정, 누군가의 소유이거나 대상이 아니라는 당당함 같은 것들이 읽힌다. 게다가 파울라는 이 그림에 남편의 성인 '모더존'을 빼고 '파울라 베커'라고 서명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 그림은 서양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기록된 여성 화가의 누드 자화상이 되었다.

<파울라> 이전에도 여성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은 있었다. 카미유 클로델과 프리다 칼로는 물론이고 인상파 최초의 여류화가인 베르트 모리조(<마네의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2014)),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천재성을 보여준 세라핀 루이(<세라핀>(2008)) 등 우리가 몰랐던 많은 여성 화가가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시대도, 화풍도 다르지만 그녀들은 동시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재평가를 받지만 이마저도 여느 '남성' 화가들처럼 크게 다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게릴라걸스의 책과 영화 <파울라>가 하는, 역사가 덮어버린 캔버스를 뒤집어 보여주는 일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성별, 권위 등의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던 다양성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 필요한 시대니까. 그것이 우리의 삶을 더 빛나게 해줄 테니까 말이다. <끝> /시민기자 조정주(진주시민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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