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 문화 탐방] (18) 양산 천성산 화엄늪
신라 고승 원효대사가 중국 제자 천명을 깨우쳐 천성산이라는 이름 유래
물줄기 풍성한 곳이지만 원효터널 건설 등 이유로 메말라간다는 얘기 나와
토지 소유자인 내원사 공군부대 떠난 원효늪 등 자연 복원 추진 중

한국 불교의 성지 화엄벌

양산 천성산에는 내원사가 있다. 신라 고승 원효(617~686)가 창건했다는데 관련 설화는 이렇다. 673년 담운사(淡雲寺)에 머물고 있을 때 보니 당나라 태화사의 법당이 산사태로 매몰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거기서는 1000명 대중이 모인 가운데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원효가 널빤지에 '해동원효척판구중(海東元曉擲板求衆)'이라 써서 날려보냈다. 해동의 원효가 대중을 구하려고 널빤지를 던진다는 뜻이다. 널빤지는 태화사에 이르러 공중에 떠 있었다. 이 신기한 모습을 보려고 1000명 대중이 법당을 빠져나왔다.

바로 그때 뒷산이 무너지면서 법당을 덮쳤다. 덕분에 목숨을 구한 대중들은 바다 건너 신라로 와서 원효의 제자가 되었다.

원효는 이들이 머물도록 일대에 대둔사와 상·중·하내원암 등 90개 사암을 지었다.

아울러 천성산 상봉에서 1000명 대중에게 화엄경을 강론하여 성불하도록 하였다. 산은 거기서 성인 1000명이 나왔다고 하여 천성산이 되었다. 화엄경을 강론했던 자리에는 화엄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90개 사암은 그 후 하내원암만 남고 모두 없어졌다.

1898년 내원사로 이름이 바뀐 하내원암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탔다가 1955년 재건되었다. 담운사는 원효가 지금의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불광산 자락에 지은 절이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이름이 척반암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척판암이 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관련 기록은 중국 송나라 스님 찬녕이 988년 지은 <송고승전(宋高僧傳)> 제4권의 '당신라국황룡사원효전(唐新羅國黃龍寺元曉傳)'이다. "원효는 처음부터 행적이 다양하였다. … 때로는 상을 던져 대중을 구하였고(혹척반이구중或擲盤以求衆) 때로는 물을 내뿜어 불길을 잡았다." 1695년 하동 쌍계사에서 간행된 <화엄현담 회현기(華嚴懸談 會玄記)> 제20권의 '해동원효'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두 기록 모두 어디서 어떤 사람에게 행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적혀 있지 않다.

그러다 1634년 우운당 진희대사가 편찬한 <천성산 운흥사 사적>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 해동 원효가 주인공이지만 장소와 대상은 다르다. 불광산 척판암이 아닌 경북 경주의 단석산 척반대에서 던졌고 구출한 대중도 태화사가 아닌 중원 대도 법운사(中原 大都 法雲寺)에 있었다. 화엄벌에 관해서는 적혀 있지 않지만 천성산이 천성산이 된 까닭과 천성산에 90개 사암이 있었다는 얘기는 나온다. 그러니까 원효가 아주 빼어난 업적을 남기는 바람에 생겨난 전설이 중국까지 건너가 기록으로 남았고 이를 근거로 삼아 새롭게 스토리텔링이 진행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천성산이 원효의 척판구중 설화를 품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바위가 많은 데 있다. 원효에게 의탁한 1000명 대중은 성불한 뒤에 모두 바위로 남았다. 실제로 천성산2봉(비로봉·855m)은 혼자 서기도 힘들 정도로 뾰족한 바위이고 천성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법수계곡은 양쪽 모두 깎아지른 절벽이다. 저마다 한껏 뽐내며 서 있는 기암괴석들이고 근육과 골격을 있는대로 드러내 놓은 바위들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1000명 대중이 원효와 함께할 너른 터전도 더불어 필요했다. 천성산1봉(원효봉·922m) 바로 아래가 이런 조건을 충족시켰다. 평지의 개활지처럼 드넓은 평원이 있다. 내려다보면 그냥 넓다는 느낌만 들지만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양옆으로 억새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천성산1봉쪽 화엄벌은 흙으로 뒤덮여 부드러운 곡선을 자랑하는 반면 천성산2봉쪽 법수계곡은 흙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암석이 날카롭고 가파르다.

한국 불교의 자존심 원효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1999년 발행, 번역 리상호·사진 강운구)를 보면 원효는 "나면서 특이하게 선생에게 배우지 않았다."(377쪽) 또 여덟 살 아래인 의상과 함께 "서방으로 가서 불교의 교화를 참관하고자 … 요동으로 길을 잡아 나가다가 변경의 수비군에게 첩자라 하여 붙잡혀 수십 일 동안 갇혔다가 간신히 풀려 돌아왔다."(380쪽) 나중에도 의상은 영휘(永徽) 초년(650년)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지만 원효는 떠나지 않았다.(<송고승전>의 '당신라국의상전(唐新羅國義湘傳)'에 나온다.) 원효는 순종 토종이었다.

원효는 신라 불교의 새벽(曉)이었다. 원효는 저술을 많이 해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만 해도 <화엄경소>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법화경종요> 등 스무 가지가 된다. 불교 대중화에도 힘써 "오막살이 가난뱅이와 어중이떠중이들까지도 죄다 부처님 이름을 알게 되고 모두 염불 한마디는 할 줄 알게 되었으니 원효의 교화야말로 컸던 것이다."(379쪽) 원효(元曉)라는 이름은 스스로 일컬은 것이다.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379쪽에 "자칭 원효라고 부른 것은 부처님의 광명이 처음으로 번쩍인다는 뜻이다. 원효는 역시 우리말이니 당시 사람들은 모두 우리나라 말로 '첫새벽(始旦)이라 불렀던 것이다"라 적혀 있다.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도록 만든 이차돈의 순교(527년)는 물론 자생적인 것이었지만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중국을 통해서였다. 중국 불교가 신라 불교보다 '한 끗' 위였다는 얘기다. 원효의 척판구중 설화는 이것을 뒤집어 엎고 있다. 이제는 신라 불교가 중국 불교를 구제할 뿐 아니라 가르치게까지 되었다. 이차돈의 순교 이후 150년 만에 신라 불교의 자생성이 표명된 사례로 볼 수 있겠다.

불교 본연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제대로 깨달으면 우쭐거리지 않는다. 반면 우쭐거리는 사람은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척판구중 설화는 우쭐거리는 기미가 뚜렷하고 그래서 좀 유치한 측면이 있다. 신라 백성들이 원효를 통해 신라가 중국보다 낫다고 뻐긴 셈이다. 신라 불교의 완전한 독립은 토종 스님이 아니라 토종 부처가 나면서 이루어진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창원 백월산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이야기다. 부득과 박박은 3년 동안 기도하고 염불한 끝에 709년 사월초파일 다음날에 제각각 미륵불과 미타불로 성불하였다. 성불한 둘은 마을사람들에게 설법을 한 다음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뻐기지도 우쭐거리지도 않았다. 원효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 만에 생긴 일이다.

화엄벌과 화엄늪의 상생

화엄늪은 화엄벌 한가운데에 있다. 화엄벌은 35만 평가량이고 화엄늪은 3만5000평 남짓이다. 화엄늪이 없었으면 화엄벌도 존재하지 않았다. 거꾸로 화엄벌이 없었어도 화엄늪은 생길 수 없었다. 이탄층(泥炭層)이 있어야 습지가 되기 때문이다.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는 이탄은 풀과 나무가 죽어서 일부는 썩고 나머지 섬유질은 그대로 남으면서 만들어진다. 억새 등등이 무리지어 자라지 않으면 이탄층은 생겨날 수 없다. 화엄벌과 화엄늪은 이렇게 서로 기대어 있다.

공군부대가 있던 원효늪 등에서 습지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화엄늪은 1998년 발견되었다. 그런데 일대에는 특별하게 물이 솟는 자리가 없다. 한국교원대 오경섭 명예교수(지질학)는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천성산을 이루는 안산암이 매우 단단하지만 차갑고 눅눅한 환경에서는 쉽게 풍화되어 토산이 된다. 다른 하나는 천성산이 아열대 대양기단의 습윤한 공기가 모이는 곳이라 짙은 안개비가 많다. 짙은 안개비와 안산암의 풍화=토산 형성이 서로를 받쳐주면서 화엄늪 같은 고산습지가 형성되었다는 얘기다.

천성산은 골짜기가 법수·대성·안적계곡 등 열두 개를 헤아린다. 골짜기마다 타고 내리는 물줄기가 풍성하다. 천성산 동쪽을 흐르는 부산 수영강과 울산 회야강이 모두 화엄늪 아래에서 시작된다. 회야강의 지천인 주진·혈수·소주·주남·곡천천과 수영강의 지천인 법기·여락천이 모두 천성산에 근원이 있다. 서쪽을 흘러 낙동강으로 드는 양산천에도 천성산은 내송·다방·북부·호계·대석·백록·상리·용연천을 풀어내린다. 화엄늪을 비롯해 습지가 많기 때문이지 싶다. 무제치1~6늪, 대성1~6늪, 안적1~4늪, 정골1~2늪 그리고 학골늪과 밀밭늪 해서 스물을 웃돈다.

요즘 이런 습지들이 말라간다는 얘기가 나온다. 천성산에는 KTX가 다니는 13.5km짜리 원효터널이 남북으로 나 있다. 원인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하는 걱정이 있다. 원효터널은 2003년 12월 착공되었다. 앞서 같은해 10월에는 내원사 산지기 지율 스님이 착공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었다. 원고는 도롱뇽이고 피고는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이었다. 천성산에 도롱뇽이 무수하게 살고 있는데도 관련 환경영향평가는 한 마리도 없다고 부실하게 작성된 데 대한 항의였다. 지율 스님은 다섯 차례 200일 넘게 단식을 하면서 소송을 진행했으나 2006년 6월 대법원은 재항고심을 기각했다.

공군부대 떠난 자리 원효늪

천성산1봉 근처에 공군 부대 레이더기지가 있었다. 1961년부터 주둔했는데 2003년 12월 철수했으며 2006년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되었다. 그 뒤 2012년까지 두 차례 지뢰제거작업이 벌어졌고 남은 지뢰 제거를 위한 추가 작업을 국방부는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양산에 사드를 배치한다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후보지가 바로 여기였다. 그런데 여기에 또 습지가 세 군데 있었다. 토지 소유자인 내원사는 애기늪·원효늪·사자늪이라고 임시로 이름을 붙여 관리하면서 자연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지율 스님은 "옛날에는 산자락을 차지한 군부대가 원망스러웠는데 이제는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고 한 적이 있다.

공군부대가 떠난 후 천성산1봉 근처에서 2012년까지 지뢰 제거 작업이 벌어졌다.

2003년 12월 15일 도롱뇽 소송 현장검증을 위하여 공군부대 담자락을 지나면서 입에 올린 말이다. 이 엄청난 역설(逆說)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양산시가 2004년 해맞이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천성산1봉 둘레에 서면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2014년에도 한 번 들먹인 적이 있지만 이제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그렇지만 양산시는 올해 다시 천성산1봉 아래에 '천성산 산림복지단지'를 만들겠다고 들고나왔다. 지율 스님의 역설이 역설로 들리지 않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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