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수정 거듭되면서 재판 기능화
교육부 실패 인정하고 결자해지해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가 '교육원리'에 충실하기보다는 '사법기관'으로 전락했다. 심각한 문제다. 이런 문제점을 제기해온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마침내 지난 20일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가 경남교육청 대상 행정사무감사 때도 이 문제를 제기했다. 한영애 위원장의 지적이다.

"학폭위 제도가 교사들의 행정업무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정작 학교폭력 예방 효과는 미미하다.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담임교사나 학교장이 따뜻한 관심과 신뢰를 바탕으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함에도, 학교폭력 접수 후 24시간 이내 학폭위에 신고해야 하므로 학교가 사법기관화되고 있다. 학폭위 위원 구성도 학교전담경찰관이나 변호사 등 전문가보다는 학부모의 비중이 높아 전문성 결여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재심을 청구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므로,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감안해 학교폭력 업무담당자 및 학폭위 위원의 전문성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

먼저 한영애 위원장이 학폭위 한계와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한 점에 대해서 경의를 드린다. 다만 학교교육에서 과연 누가 '전문가'인지에 대한 논의는 남았지만,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으로 챙겨주시길 바란다.

학폭위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근거한다. 이 법률은 2004년 제정된 이후 13년 동안 19번의 '부칙'이 붙을 정도로 많이 수정됐다. 처음 만들어질 때는 교육활동을 돕는 '보완재' 역할 정도였다. 하지만 갈수록 학교폭력 사안이 심각해지다 보니 '조정 기능'보다 점점 엄격한 매뉴얼을 따르는 '재판 기능'으로 바뀌어왔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셈이다.

특히 학폭위의 기능이 강화된 것은 2012년.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리던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그해 2월에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3월에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대폭 개정하였다. 이때 학교폭력의 개념 확대, 피해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처벌 강화, 교원과 학부모의 책무성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렇게 개정된 현행 법률이 '학교의 사법기관화'를 부추겼다.

어떤 문제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 원인부터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종종 근본 원인은 따지지 않고 드러난 현상만 잠재우며 임기응변식 대책 내놓기에 급급했다. 가령, 지난 몇 년간 교육부의 정책수단은 학교폭력 피해응답률 낮추기에 집중되어왔다. 그래서 학생들의 참여율을 높이는 전수조사방식을 고집했다. 그 결과 피해응답률은 1% 이하로 줄었다. 그러나 개별학교의 학폭위 심의 건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가벼운 사안도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학폭위를 열어 처리하도록 한 교육부의 방침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1차 심의에 불복하여 재심을 요청하는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상처를 받고 학교와 교육청은 행정업무에 치여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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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학교폭력 문제는 학교나 교육청 차원에서 깔끔히 풀 수가 없다. 학교폭력은 우리 사회 모순구조의 총체다. 결국 교육부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교육부는 먼저 지금까지의 학교폭력 대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관점과 철학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나서기를 기대한다. 폭력의 근본 원인부터 새롭게 분석하고 '법률 개정'을 제안해야 한다. 이제는 교육감들이 나서서 '교육부는 학교를 더 이상 사법기관으로 만들지 마라'고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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