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출판사가 운영하는 '봄날의 책방'이 확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영으로 달려간 지난 주말.

막바지 단장을 하느라 분주한 책방 주변을 서성이다가 바로 옆 전혁림미술관에 들어선다.

잠시 후 남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와 미술관 곳곳에 흩어진다. 작품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틈을 타 어디서 왔는지 물으니 뜻밖에 마산의 한 중학교란다. 같은 지역에서 왔다고 생각하니 반가운 마음이 솟았다.

그 참에 학생 두 명을 붙잡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유학기제 역사문화 기행으로 이른 아침 출발했다는 아이들. 앞서 박경리기념관을 들르고 곧이어 통제영을 찾을 계획이라고.

학교 가지 않는 주말,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하고 싶은 게임이나 놀이를 할 법도 한 데 지역 역사문화 흔적을 찾아 나선 게 기특하다. 내친김에 꿈까지 묻는다. 해맑던 표정을 거두고 머뭇거린다. 재차 질문을 던지니 한 학생이 마지못해 입을 연다. "역사 선생님…". 갸륵한 마음에 확인하다시피 다시 묻자 황급히 답변을 고친다. "기계 관련 일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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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역사 선생님'이라고 해놓곤 갑자기 말을 바꾸니 어리둥절했다. 사연인즉슨,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더니, 돌아온 말이 우리나라는 '헬조선'이라는 것. 한마디로 꿈 깨라는 거다. 임용 경쟁도 치열할뿐더러 먹고사는 데도 힘들다고. 그러면서 취업이 잘되는 기술을 배우고 싶단다. 꿈을 꾸기 전, 꿈을 깨는 법부터 배운 아이들.

"독학으로 미술을 배운 전혁림 화백처럼 여러분도 꿈을 품고 키우면 하고픈 일을 할 수 있어요." 미술관에 울려 퍼진 말이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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