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200년 중흥 경교 왜 사라졌을까?
정권의 보호 승승장구 권력과 함께 소멸

작년 가을, 천주교 신부인 제 귀가 솔깃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기억나시는지요?

"서기 1333년 로마 교황 요한 22세께서 고려 제27대 충숙왕에게 보내는 서한의 필사본이 바티칸 수장고에서 발견됐다"는 뉴스였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역사도 다시 써야 할 판입니다.

하지만, 다행인지 안 다행인지. '안재원 서울대 교수'가 학술지 <교회사학>에서 "내적 증거이든 외적 증거이든 충족되지 않아"서 교황님이 충숙왕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많은 사람이 신라와 고려시대에 그리스도교와의 교류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경주 불국사에서 출토된 7~8세기경 돌 십자가나 성모 마리아 소상, 여러 모양의 십자가들에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서양 종교이고 동양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큰데, 더구나 이런 유물들이 신라시대의 경주에서 발견됐다는 것이 신기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한 지파인 '네스토리우스파'가 당태종 때인 7세기에 중국에 전래된 것을 보면 동양과 그리스도교가 그닥 멀리 있지는 않았습니다.

중국에서는 빛의 신앙이라는 의미로 '경교(景敎)'라고 불리었습니다. 각지에 교회를 건립하여 교세를 제법 떨치며 200여 년간 번성합니다. 그 후 박해를 받아 세가 확 줄었다가 원나라 때 잠시 중흥했으나 결국 소멸하고 맙니다.

이 경교가 신라에 유입되지만 종교로 뿌리내리지는 못합니다. 경주에서 발견되는 그리스도교 상징물들은 경교에서 전래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는 탄압을 받을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깊이 뿌리를 내리는 성향이 있는데, 그리스도교의 한 지파인 '경교'는 왜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민중들, 백성 마음속에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경교'는 주로 왕실과 귀족들을 위한 종교였고, 그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경교 사제들은 모두 귀족 대접을 받았습니다. 국가와 정권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권력에 빌붙어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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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믿던 정권이 무너지고 박해가 오자 종교와 그 사제들은 사라지고 맙니다. 권력과의 밀착과 성직자 중심의 종교는 필히 소멸하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의 종교인들은 아직까지 사회적 존경을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본래 가진 것이 없다면 빼앗길 것도 없습니다. 가진 것이 많을 때 빼앗길까 두려워하고 경계하게 됩니다. 유한하고 짧은 정권과 권력, 돈에 목을 매지 말고 자신을 만드신 영원하신 신과 신께서 사랑하는 사람 마음속에서 영원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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