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낳은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폭력
부조리 고발 노(老)작가의 새로운 실험

평창 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때 강릉에서 여는 '문화올림픽' 설치미술제 때문에, 죽음과 벗이 되어야만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막장(?)의 삶을 살았던 황재형 화백 작업실을 찾았다. 낙동강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시 '황지연못' 근처에 있는 '광부 화가' 황재형 아틀리에. 들어서는 순간 대형 캔버스에는 검은 목탄이나 유화로 작업한 사실적 그림 숲이 탐미주의자를 맞이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자세히 보니 작품을 만들기 전의 밑그림이나 드로잉이 아니라 머리카락을 재료로 화폭에 담은 완성품! 대중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 백화점에서 파는 듯한 예쁜 꽃 그림이나 아름다운 풍경 그림이 범람하는 이 시대. 미추(美醜)의 개념에 반전을 주는 전율적인 머리카락 작품을 제작하는 60대 중반의 노 화가에게서 들은 스토리도 충격적이었다.

"무엇 때문에 머리카락을 소재로 미술작품을 하십니까?" "한 여성에게서 들은 황혼이혼 이야기에서 충격을 받았어요. 70년대 시집을 간 여성이 첫 딸을 낳고 몸조리하며 누워있는데 시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왔어요. 첫 숟가락을 뜨는데 이상한 것이 걸렸데요.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긴 머리카락 한 움큼! 아들이 아니라 딸을 낳았다고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먹을 미역국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집어넣은 것이죠…. 고부간의 갈등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계급과 권력 구조를 보았죠. 이 많은 머리카락은 태백지역 미용실에서 미용사들의 협조를 통해 수거한 것이고…."

고희(古稀)를 눈앞에 둔 나이에, 탄광촌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재료로 새로운 작품을 실험하는 황재형 화가. 그의 작품은 두꺼운 마티에르와 회화적 조형성이 독특한 리얼리즘 그림이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런데 '문제적 작가'로서 성취한 기존의 화풍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모험을 하는 예술가의 길!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도시와 제도권 미술계의 오염된 관행에서 탈출, 오지의 탄광촌에서 '인간애'를 실천한 작가의 신념과 삶이 다시 오버랩되었다.

황재형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졸업반 시절 극사실주의로 갱도 매몰 사고로 사망한 광부의 옷을 클로즈업하여 표현한 작품 '황지 330'으로 기법, 소재, 주제의식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중앙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민중미술가들과 함께 '임술년'을 조직하여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조형언어에 대하여 고민하고, 노동하는 민중의 삶 내면의 진지한 무게감을 다양한 재료로 진솔하게 표현해온 작가다.

국제적인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에서 아티스트들은 개성 있는 목소리와 진실한 모습을 보여 주려 하지만 그 속에는 성공, 명예, 돈의 열망이 숨겨져 있다. 권위와 명성 있는 글로벌 도시의 미술축제들은 예술과 자본이란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대중의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며 관광으로 먹고살면서, 작가들에게는 허황한 꿈을 심어주는 곳이다. 이러한 힘에 휘둘리며 허세를 부리는 것이 참여 작가와 미술 관계자들의 모습인데,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서 어떤 미술의 진보나 예술의 사회적 기여를 시도하는 건강한 작가정신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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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위상 있는 아트페스티벌이 아니라 강원도의 한 작업실에서 감동하고 성찰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때 기획하는 전시의 지역 정체성, 문화적 상상력, 예술적 창조성을 담을 파이어 아트 및 퍼포먼스의 방향성을 찾았다. 천박한 자본의 욕망은 하늘 향한 거대한 마천루를 지었지만 어두운 바다로의 참담한 침몰을 용인했던 대한민국! 그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여는 미학적, 철학적 '희망 불씨'를 얻었다. '창조적 파괴'로 자존의 길을 걷기 위해 머리부터 짧게 깎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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