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지기공동체 깨끗한 세상 대물림
크는 아이들 농촌서 계속 살게 됐으면

제가 사는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 자락 작은 산골 마을에는 귀농한 젊은 부부들이 살고 있습니다. 대기 마을, 원동 마을, 동대 마을, 연동 마을, 목곡 마을과 같은 곳에서 농사지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2006년 3월 11일, 귀농한 젊은이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여 첫 모임을 했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 이름이 '나무실'이라 자연스럽게 '나무실공동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첫 모임엔 네 가구 6명이 참석했습니다. 귀농한 젊은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2008년 1월 14일 '열매지기공동체'라 이름을 바꾸고, 가족이 함께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여섯 가구 15명(아이 포함)이 참석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2017년 11월, 열매지기공동체 식구들은 아홉 가구 27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어떤 해는 해마다 아이들이 태어나 산골 마을이 떠들썩했습니다. 귀농한 젊은 어머니가 아기를 업고 나가면 산골 할머니들이 모두 한 말씀씩 하십니다. "아이고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아이고, 오늘 참 귀한 거 보았구만." "수십 년 동안 아기 울음소리 한번 듣지 못하고 살았는데 경사네 경사야." "그래그래, 우리가 젊었을 때는 동네마다 아이들이 뛰놀았다 아이가. 우짜다가 농촌이 늙은이들로 꽉 찼는지…." "묵고살라고 다 도시로 나갔다 아이가." "묵고살라모 농촌에 있어야 묵고살 게 나오지." "요즘 젊은 것들은 돈을 좋아한다 카이. 하느님 부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한다 카던데." "어쨌든 도시에서 젊은 부부들이 들어와 아기 낳고 살아주이 얼매나 고맙노. 아기 우는 소리 들으니까 사람 사는 것 같구만."

아이들이 있어 사는 맛이 절로 나는 열매지기공동체 식구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합니다. 농번기에는 농사일 마치고 저녁에 모임을 하고, 농한기에는 낮에 모임을 하기도 합니다. 달마다 식구들 집을 돌아가며 모임을 하고, 그날엔 모두 반찬을 한 가지씩 갖고 옵니다. 모임을 준비하는 집에서는 밥과 국만 끓이면 되는 것이지요. 모임을 준비하는 집에서는 부담이 줄어들고, 참석하는 사람들은 집집마다 가져온 음식을 맛볼 수 있어 마치 잔칫집에 온 것 같습니다. 공동체 달모임이 아니더라도 돌잔치와 집들이 할 때에도 돈을 주고받지 않고 반찬을 한 가지씩 가져 옵니다. 아무도 부담 갖지 않고 참석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열매지기공동체 식구들은 독한 농약과 화학비료와 비닐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짓습니다. 더구나 '생태뒷간'을 지어 자기 식구들이 눈 똥오줌을 거름으로 만들어 다시 흙으로 돌려주고 있습니다. 기름과 가스와 전기를 적게 쓰려고, 작은 흙집을 지어 구들방에서 살고 있으며, 어떤 식구들은 농기계조차 쓰지 않고 농사를 짓습니다. 경운기, 관리기, 건조기, 도정기와 같은 농기계나 농기구를 집집마다 사지 않고 같이 쓰기도 합니다.

열매지기공동체 식구들은 인간들의 탐욕으로 죽어가는 생명과 사라져가는 공동체를 살리려고 주어진 삶 안에서 무척 애쓰고 있습니다. 흙에 뿌리내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선배로서 작은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바쁜 농사철에는 한 형제처럼 노동을 함께 하고, 늘 공부하는 마음으로 농사지으며, 몸과 마음을 자연에 맡기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더구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려고 함께 길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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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지기공동체 식구들 27명 가운데 아이들이 11명입니다. 정구륜(16세), 정효준(5세), 조정욱(13세), 조정한(10세), 조정민(7세), 김예슬(24세), 김수연(20세), 이이랑(5세), 김지윤(19세), 이온유(13세), 이봄(8세)은 부모와 함께 산골 마을에서 흙을 밟으며 살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이 아이들이 도시로 나가지 않고 농촌에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길이 있을까요? 산골 청소년들과 함께하려고 '담쟁이 인문학교'도 만들고, 농부가 되려는 청년들에게 티끌만 한 보탬이 되려고 열매지기공동체 농부들 스스로 기금을 모아 한 해 100만 원씩 청년들에게 지원금을 주고 있지만, 아직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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