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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 품은 '살아있는 교과서' 진해

[우리 고장 역사문화탐방] (5)진해
진해고 학생 '지역 나들이'
웅천읍성·중원로터리 등 임란·일제시대 유적 찾아
내 고장 애정도 새록새록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7년 11월 21일 화요일

경남도민일보가 진행하고 경남도교육청이 지원하는 2017 청소년 우리 고장 역사문화탐방에서 진해 나들이는 7월 8일 진해고교였다. 자기가 나고 자란 고장을 제대로 한 번 둘러보자는 취지다. 자기 고장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그에 대하여 아끼는 마음은 걸맞게 생기게 마련이다.

먼저 제황산공원을 찾았다. 모노레일 카를 타고 진해탑으로 올라가면서 중원로터리 일대를 내려다보았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전용 거주지역이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근·현대 역사·문화 유적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진해 학생이니까 한 번 정도 와본 친구들은 많겠지만 제대로 찾아본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진해탑 2층은 진해박물관이다.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일본이 진해를 군항도시로 어떻게 개발했는지가 잘 나와 있다. 원래 살던 조선인들을 쫓아내고 드나들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우체국을 비롯한 여러 지원시설을 들여 조선 지배와 대륙 침략을 위한 기지로 만들었다. 일대에서 가장 높은 제황산 꼭대기에는 40m짜리 러일전쟁 승전 기념비를 세웠다.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도록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진해 앞바다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승전지이기도 하다. 안골포해전·합포해전·웅포해전에서 왜적을 물리쳤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 이순신 장군 동상이 1952년 진해에 들어선 까닭이 이런 데에도 있다. 지금 북원로터리에 있는 이 동상은 두 손을 앞으로 마주 잡은 품이 단정하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중원·남원로터리로 자리를 옮겼다. 앞에서 끌고 다니며 설명하는 대신 학생들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찾아다닌다. 5명씩 꾸려진 팀마다 미션지가 하나씩 주어졌다. 중공군 출신 반공포로가 운영했던 중국집 영해루, 대통령 박정희의 유신헌법을 기리는 10월 유신기념탑, 당시로서는 대단한 첨단시설이었던 진해우체국, 한국전쟁 전후 피란온 문화예술인들의 가난한 일상이 어려 있는 문화공간 흑백,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일본에 맞서 싸운 두 영웅 백범 김구와 충무공 이순신이 350년 세월을 뛰어넘어 만난 자리인 백범 김구 친필 시비 등을 몸소 찾아보고 손수 사진 찍는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인데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다며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이다.

점심을 먹고 먼저 찾은 데는 제포진성터. 제포진성터는 요즘으로 치면 해군 경남본부 기지라 할 수 있다. 바로 앞 바닷가에 있는 제포왜관을 오가는 왜인들의 움직임을 통제·관리했다. 제포왜관은 조선 세종 시기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를 정벌한 뒤에 설치되었다. 노략질을 못하게 하는 대신 생활물자를 교역으로 얻도록 해줌으로써 불만을 다독이는 조치였다. 그러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왜인들은 틈만 나면 고개 넘어 안쪽으로 들어오려 했다. 제포진성의 장병은 그런 왜인들을 막았다.

진해 웅천읍성 옹성 위를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 /김훤주 기자

세스페데스 공원을 거쳐 웅천읍성으로 옮겨갔다. 세스페데스는 서양인 최초 도래인으로 기록되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따라 들어온 스페인 신부의 이름이다. 웅천읍성에서는 먼저 옛날 성곽에 대한 공부를 간단하게 진행했다. 복원된 웅천읍성은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다. 성문을 동그랗게 둘러싼 옹성, 양옆으로 펼쳐져나간 성곽 끝에 삐죽 튀어나온 치성, 성곽을 따라 깊게 판 다음 물을 채워넣은 해자, 해자 위에 들어올릴 수 있도록 만든 조교,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다칠 수밖에 없도록 해자 바닥에 촘촘하게 꽂아놓은 나무 꼬챙이 등이 그것이다.

읍성 문루에 올라서서 먼저 주변 풍경을 눈에 담았다. 편평한 들판 가운데에 야트막하게 들어선 읍성이다. 내려다보는 주변 풍경은 평범했지만 산과 들이 모두 부드럽게 이어져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 아이들은 성곽 위를 오가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쪽저쪽 펼쳐지는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 서로 웃으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옹성과 가까운 석성 아래쪽에 새겨져 있는 글자도 함께 살펴보았다. 웅천읍성은 당시 진해에 있던 사람들만으로는 쌓을 수 없었다. 주변 고을에서 더 많은 백성을 동원해와야 했다. 여기 있는 글자는 진주에서 온 정 아무개와 관련된 것이다. 아마도 어디에서 어디까지 이 사람 책임 아래 작업을 했다는 표시다. 이를테면 건축실명제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는 당시 권력자들이 백성에게 책임을 지운 흔적이다.

마지막으로 찾은 데는 김달진문학관이다. 여기서도 진행은 미션 수행식으로 하였다. 찬찬히 찾아보면서 적혀 있는 시들 가운데 해당 글귀를 찾아 칸을 채우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문학관은 어서 둘러보고 빨리 나갈수록 좋은, 따분한 공간이기 십상이다. 이렇게 몸소 찾게 하고 글자라도 한 번 적게 하면 좀 더 들여다보고 좀 더 머리에 새기게 된다.

김달진문학관 바로 옆 김달진 생가에서 자기가 지은 삼행시를 낭독하는 학생들.

그때 난데없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진해고등학교 교가였다. 해설사 선생님으로부터 진해고 교가를 작사한 사람이 바로 김달진 시인이라는 얘기를 듣고 아이들이 합창한 것이었다. 노래를 마친 아이들 얼굴에는 웃음이 맴돌았다. "우리 학교 교가를 지은 분이 여기 계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왠지 뿌듯해요!" 이어서 바로 옆 김달진 생가를 찾았다. 마당과 건물 등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마루와 축대에 엉덩이를 걸쳤다. '김달진', '문학관', '진해고' 등을 갖고 3행시를 지었다. 작품을 앞으로 내게 한 다음 원하는 친구는 앞으로 나와 자기 시를 낭독할 수 있게 했다. 웃음도 터지고 감탄도 터졌다. 아울러 아이들 "우와!" 소리가 컸던 몇몇 친구에게는 5000원 상품권도 하나씩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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