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지진 '액상화 지진' 가능성 제기
지반 약한 매립지 건축물 정밀진단을

사상 초유의 대학 수능시험 일주일 연기 결정 등 규모 5.4의 '포항 지진' 후유증이 너무 크다. 19일 현재까지 재산 피해액 522억, 부상자 76명 등으로 잠정 집계됐지만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보이는 '지진 트라우마' 등 정신적 불안 호소를 더하면 유·무형의 피해는 산술적 계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균열·파손 등 지진 피해를 입은 주택 2556채와 상가, 공장 건물 등 사유시설 복구 비용과 소요 시간도 가늠하기 어렵다. 복구를 위해선 먼저 안전진단을 거쳐야 하는데 현재 관련분야 인력이 절대 부족한 상태다. 안전진단 결과 단순 보강이 아닌 해체·신축으로 가닥이 잡히면 건물 소유주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경남은 이번 포항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가 없지만 '우리 지역도 지진에 안전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여기에 지난 17일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손문 교수 연구팀이 포항 지진 현장조사에서 발견한 '액상화 흔적'이 예사롭지 않은 경고로 들린다. 연구팀은 규모 5.4의 지진 피해 규모가 이처럼 큰 원인으로 '액상화 지진'을 지목했다. 액상화는 강한 진동에 의해 지하수가 주변 점토나 모래와 섞여 흙탕물이 지표면 밖으로 분출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국내 지진 관측 사상 액상화가 발견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포항 지진의 형태가 액상화로 규명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건물이 일시적으로 물 위에 떠 있는 상태이거나, 물이 빠져나간 공간으로 건물이 그대로 주저앉는 땅 꺼짐 현상이 나타난다. 건물을 내진설계 기준에 맞춰 아무리 잘 지었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연구팀은 포항 대성아파트도 액상화 지진 탓에 지반이 뒤틀려 기울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기둥이 심하게 뒤틀어진 필로티 구조 다세대 주택은 일단 부실시공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액상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지반이 약한 지역의 건물이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팀의 '액상화 지진' 가능성은 매립지가 많은 경남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매립지는 충분한 자연 침하현상을 거친 후 건물을 세우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지 않을 땐 기우뚱이나 균열·침하로 건물 내구성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필로티 구조의 다세대 주택에 대한 전반적인 안전진단과 함께 연약지반에 세워진 건축물에 대한 정밀 진단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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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은 태풍이나 폭우 등 다른 자연재해와 달리 사전예고가 불가능하다. 몸으로 느끼는 순간 바로 피해가 발생하는 무서운 재난이다. '피해 최소화'가 최고의 목표인 자연재해를 다스릴 수 없다면 평소 대비하고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포항 지진에서 확인한 사실은 내진설계에 의해 제대로 지어진 건물은 창틀이나 문짝 하나도 이상이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국내 지진 관측 사상 최초로 기록될 것으로 보이는 '액상화 지진' 대비를 위한 노력과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재해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준비 안 된 곳에 치명적인 피해를 남긴다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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