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로형 복도에 세탁기 줄 잇고 벽마다 보일러 붙어 있구나
'만 41세 용띠' 최고 아파트 그 자리 여전히 지키고 있구나

왁자지껄한 아이들 소리는 없다. 녹슨 놀이기구만 없다면 풀 무성한 공터에 가깝다. 창원 성산구 삼동로128번길 60 내동마을아파트 놀이터 풍경이다.

잘 알려진 이름은 내동 주공 1단지 아파트. 5층짜리 공동주택은 창원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1976년 3월 1일 준공이니, 만 41세 용띠 되겠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가 옛 창원시 아파트 건설 대성황 시작점이다. 흐름에 따라 지어진 내동마을아파트는 200가구를 품었다.

아파트가 성황이었지만 1976년 기준 전체 가구 수의 20.26%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은 단독주택보다 아파트 찾기가 더 수월하다. 고개만 돌리면 아파트니까. 1980년대 창원지역 아파트는 단독주택 가구 수를 추월했다.

내동 주공 1단지 아파트 출입문.

2000년대 지어진 창원지역 아파트는 재건축이 대다수였다. 2004년 반송 2단지를 시작으로 2005년 반송 1단지, 2007년 외동 주공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갔다. 외동 주공아파트와 같은 해 내동 2단지 아파트, 명곡 주공아파트 등 3곳이 재건축을 시작했다.

내동 주공 1단지도 '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아직 제자리다. 바로 옆 내동 2단지에는 최고 15층, 12개 동 아파트가 새로 들어섰다.

아파트 키드에게 주공아파트는 추억이다. 통로형 복도에 세탁기가 줄을 잇고, 벽에는 다닥다닥 보일러가 붙은 풍경을 쉽게 보기 어려운 요즘이다.

창원 성산구 내동 주공 1단지 아파트. 멀리 내동 주공 2단지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새 아파트가 보인다. /최환석 기자

이별을 아쉬워한 몇몇 아파트 키드는 재건축과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 자신의 고향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벌였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시작으로 <과천주공아파트 101동 102호>, <고덕주공, 마지막 시간들>이라는 책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현재 서울 강남구 재건축 예정지인 개포주공아파트에서는 '개포동 그곳'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재건축이 되면 사라질 단지 안 나무와 추억 공간을 기록하는 일이다.

아파트 계단 옆에 붙은 우편함.

기록이 끝나면 이윽고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선다. 옛 아파트 키드에게 더는 고향이 아닌 공간이지만, 이곳에 정주할 새로운 아파트 키드에게는 또 다른 추억을 쌓는 공간이다.

머지않아 내동 주공 1단지 아파트도 다른 주공아파트가 겪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할 것이다. 기록을 남기려거든 지금이 적당한 시점 아닐까 싶다.

5동 옆에 붙은 정자에 노인들이 몰려 앉았다. 조용히 다가가 말을 걸어 보지만, 불청객과 말을 섞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다.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한 노인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 모(68) 씨다.

통로형 복도에 집기가 줄을 이었다.

"부산에서 마산으로 시집와서는 처음 이 아파트 들어설 때 창원으로 왔지. 그때 돈으로 350만 원 주고 들어왔어. 15평(49.59㎡)짜리야. 그게 언제냐, 지금 마흔네 살 먹은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 즈음이니까. 뭐 한평생 살았다고 봐야지."

서 씨가 추억을 꺼내자 조용하던 노인들이 그제야 하나둘 자신의 추억을 보탠다.

"여기 앞에 목련아파트도 오래됐지. 교수나 의사 같은 돈깨나 버는 사람들이 살고 그랬어." "옛날에는 여기 아파트 앞 상가 지하에 당구장이며, 통닭집이며, 옷가게가 줄을 지었다니까. 그때는 동네가 시끌시끌했지."

정자를 벗어나 아파트 단지 앞 이면도로를 따라 걷는다. 저녁 먹으라며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는 없고, 아파트 뒤편에 있는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기계 소리만 가득한 늦은 오후다.

텅 빈 놀이터.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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