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서 오래 집중하면 효과있을까
열공 중 딴짓 오히려 기억 효과 증진

16일 치러졌어야 할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 때문에 23일로 일주일 연기됐다. 규모 5.4 지진에 모든 국민이 깜짝 놀랐지만, 수능 당일에 발생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해마다 수능일이 다가오면 입시와 직접 관계없는 필자도 기도를 하게 된다. 오랜 기간 열심히 공부한 모든 수험생들이 무사히 시험을 마무리하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 탓도 있겠지만, 수험생 자녀를 둔 지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필자도 자녀 학습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많은 부모는 자녀가 아주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딴짓을 하지 않으면서 뛰어난 집중력으로 공부하기를 바란다. 또한, 실현가능성이 큰 치밀한 계획, 이를 실천할 불굴의 의지와 조용한 환경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부모의 기대는 매번 무너지고,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 자녀는 괜히 죄스러워진다. 부모가 선호하는 이런 학습법이 정말 효과적일까? 근거 없는 상식과 막연한 상상이 만들어낸, 단지 부모의 희망으로 꽉 채워진 학습법은 아닐까?

1985년 미국 텍사스 A&M대학교 스티븐 스미스 교수는 54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배경음악이 있는 교실과 없는 교실에서 40개 단어를 외웠을 때 어느 그룹이 더 잘 외우는지를 실험했다. 실험결과는 의외였다. 조용한 환경에서 단어를 외운 뒤, 조용한 환경에서 테스트받은 그룹의 점수가 가장 낮았다. 스미스는 배경음악은 무의식적으로 기억에 저장되며, 공부할 때 들었던 음악을 들려주면 이것이 단서가 되어 외웠던 단어가 떠오를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너무 조용한 공간은 기억을 끄집어 낼 때 단서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늘 같은 장소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은 어떨까? 1978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스티븐 스미스 교수 연구팀은 학생들에게 4음절로 된 단어를 외우게 했다. 피실험자의 절반은 같은 장소에서 몇 시간 간격을 두고 10분 동안 단어를 외웠고, 나머지 절반은 장소를 옮겨가며 단어를 외웠다. 세 시간 후, 외웠던 단어를 생각나는 만큼 쓰도록 했다. 장소를 바꾸지 않고 같은 곳에서 단어를 외운 그룹은 40개 단어 중 평균 16개를 기억했다. 반면 장소를 바꿔가면서 단어를 외운 그룹은 24개를 기억했다. 때로는 장소를 바꿔가며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부를 하며 딴짓을 하면 효율이 떨어질까? 1927년 독일 베를린대학교 쿠르트 레빈 교수 연구팀은 끝나지 않은 일이나 목표는 완결된 것보다 기억 속에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피실험자들은 완성된 과제에 비해 방해받거나 완성되지 않은 과제를 평균 90% 이상 더 많이 기억했다. 또한, 이후 연구에서 사람들이 일에 가장 몰입하고 있는 순간에 몰입을 멈추도록 방해하는 것이 기억을 극대화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따라서 열심히 공부하는 중에 딴짓을 하면 오히려 기억을 높일 수 있다. 아무리 고민해도 풀리지 않던 문제의 해결책이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를 때가 있다. 이 순간은 주로 엉뚱하게 찾아온다. 쉬는 것도 딴생각을 하는 것도 집중에 포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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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이라면 누구나 단 1초라도 빨리 시험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일주일이라는 영원보다도 더 긴 시간을 '수험생'이라는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에 많은 수험생이 힘들어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어차피 시험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너무도 분명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수능이 인생의 마지막 시험은 결코 아니다.

p.s. 수능을 앞둔 수험생의 중압감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필자에게 칼럼 마감일을 앞둔 중압감도 만만치 않다. 칼럼 마감일 전날 저녁 수능 일주일 연기 방침이 발표됐다. 칼럼을 다 쓴 뒤에야 수능 연기 사실을 알았다. 칼럼을 다시 써야만 했다. 수능 연기에 따른 피해자가 여기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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