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희열과 떨어지는 안타까움
오색빛 머금은 살아있다는 신호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22분경, 규모 2의 지진 두 번과 대한민국 역사상 2번째로 큰 규모 5.4 지진이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에서 일어났다. 지난 2016년 9월 12일 오후 8시32분경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에서 일어난 두 번째 지진 이후 대한민국이 가장 크게 흔들렸다.

포항을 넘어 경남은 물론 서울까지 흔들렸던 이번 지진을 통해 행정안전부의 지진발생 시 국민행동요령을 다시 읽는다. 긴급재난문자와 함께 낙엽들 분분히 날렸다. 하지만, 대지가 흔들리는 순간 나는 떨어지지 않는 나뭇잎도 보았다.

노란 은행잎 내리는 가을. 절기상 겨울의 시작인 입동이 지났지만 가을이 한창이다. 무르익은 것들은 떨어진다. 나무가 살기 위해 떨어져야 하는 낙엽들.

바람이 불 때마다 소나기가 내린다. 낙엽들 사이사이로 바람이 부풀어 올랐다. 바람 부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는 아직 많은 나뭇잎이 나무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 쓰고 있다.

생각이 생각을 물기 시작한다. 잎이 떨어지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추워지는 날씨에 입김 한번 불어오는 시간. 그 짧은 시간에 잎이 떨어진다. 이상하게도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무릇 봄도 마찬가지다.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 이 질문에 답한 대다수 사람은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 말한다. 온난화 때문에 기후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지난 100년간 1.5℃ 상승한 한반도는 아열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온난화 때문에 여름철의 증가와 농작물, 해양생물 등의 변화가 우리 생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영향은 빙하를 녹이고 온도 차로 인해 지구의 자전축을 이동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단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먼 과거부터 꾸준히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당연하다 말한다. 그러나 몇십 년의 데이터를 통해 기후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많은 사람이 경각을 울리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들 잠시 접어두고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본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윤도현 밴드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 중

경험이나 습관이 쌓여 익숙해지는 '성숙', 새로운 발전 단계로 들어설 수 있도록 조건이나 상태가 충분히 마련되는 '무르익음', 이러한 단어를 가슴 깊숙이 마시려면 떨어져야 할까.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됐다.

흔들리지 않으려 힘쓰는 59만여 명의 응시생들 앞에 지진이 났다. 여진은 16일 수능 당일에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펜을 놓지 말았으면 한다. 어떠한 흔들림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다짐을 했으면 한다. 대지가 흔들리는 순간 흔들리지 않는 나무들같이, 굳세게 버틴 꽃들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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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지 않은 은행잎을 보며 생각한다. 그 노란 것들이 분분히 날리는 가을을 생각한다. 어쩌면 절정을 이루던 것들. 벚꽃이 떨어지면 봄이 끝나고 나뭇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끝나고. 그 뒤 소나기와 눈보라가 올 것을 알기에, 버텨내야 함을 알기에. 나의 가을은 절정의 희열과 떨어지는 안타까움 사이에 있다.

오색 빛 머금은 나뭇잎의 절정. 짧은 순간,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 지구는 자꾸만 흔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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