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 있어 더 안전하지만 조기 하교시켜 '학부모 빈축'

경북 포항에서 강진이 발생한 지난 15일 경남지역 105개 학교 학생이 조기 귀가했다. 안전을 담보해야 할 학교가 여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학생을 귀가 조치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진이 나면 집이나 학원, 거리도 추락물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지진 발생 시 대피 요령처럼 운동장이 있는 학교가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경남도교육청은 15일 진앙 반경 100㎞ 이내 김해·양산·밀양교육지원청에 △학교 교육활동 중지와 대피 △보호자 연락 후 귀가 조치 △임시 휴업 조치 등을 지시했다. 창원지역 2개 학교를 포함해 도내 105개 학교가 학생을 조기 귀가시켰다. 맞벌이 부모는 이에 "학교가 학생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고 비판했다.

초등학생은 학원 차량 시간에 맞춰 대부분 학교를 벗어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조기 귀가로 학생이 걸어서 학원을 가는 등 여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길거리에 내몰린 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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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교 4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보호자 연락 후 귀가 조치를 한다는 것을 아침 신문을 통해 알았다. 15일 오후 3시가 넘은 시각, 아이가 지진으로 학교에서 일찍 귀가하라고 해서 학원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이후 여진이 느껴져 아이에게 전화를 했을 때 학원에서 건물이 흔들림을 느꼈다고 했다. 학원보다 학교가 더 안전해야 하고 책임을 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혹여나 아이가 길을 걷던 중 여진으로 간판이 떨어지거나 벽면이 훼손돼 다치는 사고가 있었으면 어찌할 뻔 했느냐"고 덧붙였다.

도교육청은 지난해 9월 경주 지진 발생 후 실제 상황에서 작동 가능한 종합 안전 대책을 수립하고자 자체적으로 '지진 재난 종합 안전 대책 계획'을 수립해 지난 2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도교육청 안전총괄담당관 관계자는 "대구, 부산과 같은 단일지역과 달리 경남 지역은 워낙 넓어 지진 강도나 시민 체감에 큰 차이가 있다. 모든 상황에 일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고민스러웠고 지진 발생 가능성을 고려해 지진 규모와 진앙 반경에 따라 위기대응 단계별 절차를 지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계획을 보면 일과 중(등교시간부터 오후 5시까지) 지진이 발생하면 규모별로 △4.0 미만 : 교육활동을 정상 운영하고 대피 여부는 학교가 판단 △4.0 ~ 4.9 : 교육 활동을 중지하고 보호자 '요청 시' 귀가 조치 △5.0 이상 : 교육 활동 중단·대피, 보호자 '연락 후' 귀가 조치(초·중등 동일), 유치부·초등학생·특수학생은 보호자 '도착 후' 귀가 조치하도록 돼 있다. 미귀가 학생은 학교 보호 후 귀가 조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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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진이 일어나자 운동장으로 대피하는 초등학생들./연합뉴스

도교육청은 지난 15일 매뉴얼에 따라 김해·양산·밀양지역 학교에 '보호자 연락 후' 귀가 조치를 지시했지만 이를 이행한 학교는 드물다.

김해 장유 한 중학교 1학년 학생은 "지진 진동으로 학교 운동장으로 대피 후 10분쯤 뒤 안내 방송이 나왔다. 놀란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어 방송이 잘 들리지 않았고, 한 친구가 '집에 가라는 방송'이라고 설명했다"며 "교실에서 가방을 챙기고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학교 밖으로 나왔다"고 전했다. 이 학생 역시 학원에서 여진을 느껴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고 말했다.

도교육청에도 귀가 조치에 대한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도내 학교 건물 중 내진 보강률은 15~20%로 대부분 학교 안에서 학생들을 붙잡아 둘 수 없는 상황이다. 체육관 역시 지진 발생 때 학생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곳이 많다. 담임이 학부모에게 일일이 연락 후 조치를 하면 좋지만 15일은 날씨도 추웠고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지진 종합 계획 시행 이후 도교육청 귀가 조치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학생이 알아서 귀가해 안전을 책임지는 조치에 대해 세밀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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