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조롱·끊임없는 성찰, 담백하게 울리다

기나긴 시간을 건너면서 곰삭은 언어의 향이 가득하다. 삶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완숙한 시선도 돋보인다.

김우태(53·사진) 시인이 오랜 침묵을 깨고 첫 시집 <비 갠 아침>(사진)을 발간했다. 198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비 갠 아침'으로 당선되며 문단에 첫발을 들여놓은 지 28년 만이다.

등단작이기도 한 '비 갠 아침'을 표제로 옮긴 시집은 시인의 작품세계를 응축한 57편의 시가 4부로 나눠 담겨 있다.

30년 세월을 이어온 시편들은 오래된 경험과 기억들이 내재돼 있다. 생생하거나 신선하진 않다. 노련함과 세련미와도 거리가 멀다. 그저 군더더기를 덜고 사유의 깊이를 더하면서 간결하고 담백한 울림으로 오랫동안 마음을 붙잡는다.

경남도청을 거쳐 현재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근무 중인 시인은 20여 년간 공직에 몸을 담으면서 시적 탐구를 향한 끈을 놓치지 않았다.

시의 형식과 본질은 미학적 인식을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현실과 사물에 관한 의식이 밀착돼 있다. 주제를 사회와 역사적 삶으로 확장한 것.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비추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대재앙을 대입한 '핵'과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정치인을 묘사한 '변신'은 시대를 관통해 공감의 세계로 이끈다.

현실을 음미하면서 때론 절제된 언어유희를 통해 풍자와 해학의 정신을 녹이기도 했다.

'법 만드는 사람 법 지키는 법 없고/법 없이 사는 사람 잘 사는 법 없다/(중략)/아, 그래도 천만다행이런가! 법 없이 사는 사람, 죽으란 법 없으니-' 규범과 도덕률을 지키지 않는 이들이 법을 부르짖는 현실을 조롱한 '법은 없다'는 절묘한 대구가 차지다.

그들만의 '상 문화'를 꼬집은 '개와 월식' 또한 '상賞'을 '썅'으로 희화화했다.

비판적 의식이 섞인 글의 토막에는 실상 순연한 시인의 마음이 깔려 있다.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 눈치를 살피는 상황을 그린 '낙엽 계급장'과 길 가에서 죽은 작은 새를 발견하고 어쩌지 못해 양지바른 곳에 묻어 줬던 시편 '어떤 날'은 어쩐지 씁쓸하고 한편으론 뭉클하다.

계간지 <시와 반시> 창간 25주년 기념호에서 시인은 대학 4학년 때 신춘문예에 덜컥 당선되고 생각지 못한 문단에 등단하게 됐다고 밝힌다. 이어 늦게나마 첫 시집을 발간하기까지 시인으로서 책무와 사명감에 시달렸던 사실을 고백한다. '白紙(백지) 앞에서'와 '불일폭포에서'는 시인과 한 개인으로서 삶과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치열한 자기반성이 잘 드러난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쓰고자 했던 시인 본연의 욕구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게 하고, 위로와 치유를 또한 건넨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존재의 구심적 응축과 원심적 확장 과정을 결속하여 혼신으로 노래한 심미적 언어의 도록이다"고 정의했으며, 성윤석 시인은 "궁극을 향해 가고 있는 시는 가볍고도 무겁다. 진지하면서도 통쾌하다"고 평했다.

1964년 남해에서 태어난 시인은 <남해사투리 사전>을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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