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지운 색색깔 페인트·작가와 교감
이 도시가 행복을 만드는 법
'지역성·주변 환경과의 소통'
헬싱키가 일깨운 공공예술 조건
'파실라 지구' 변화시킨 힘으로
그래피티·주민 열정 채운 공간
예술로 발현되는 삶 모습 비춰

핀란드 헬싱키는 스스로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라고 말한다. '모든 작품이 시민 소유'라는 게 헬싱키 퍼블릭 아트(Public Art·공공예술)의 철학이다. 시는 시민에게 도시를 채울 예술작품에 대한 결정권을 준다. 도시계획이 세워지면 공청회를 지속적으로 열고 주민과 만나 우리 마을에 어떤 예술품을 들일지 논의한다. 예술을 삶의 도구로 활용한다.

◇시민은 수용자가 아니라 주최자

서정애(디자인 그룹 아에오 공동설립자) 씨는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서울은 미술관 국제콘퍼런스'에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시민이 주최가 되는 헬싱키 공공예술 사례'를 발표했다.

서 씨는 핀란드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활동가다. 음식을 활용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그룹 아에오를 만들어 헬싱키 도심에서 열리는 '레스토랑데이'(음식을 통해 함께 즐기자), '클리닝데이'(내게 쓸모없는 것을 이웃과 나누자) 등 시민이 직접 연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아에오는 일상과 직접 연결하는 문화에 관심이 많다. 내 삶을 빵으로 만들어 먹는 프로젝트를 했다. 예술가와 시민이 협업해 만드는 공공예술인 셈이다"며 "헬싱키 시민들이 '하비스 아만다' 동상을 해마다 직접 씻긴다. 단순한 예일지 몰라도 공공예술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를 잘 말해준다"고 했다.

시민들은 도심 곳곳에 놓인 조각품 큐아르코드(2차원 바코드)로 작품 배경과 작가 의도를 이해한다. 미션처럼 주어지는 야외조각품 가이드 투어에 참여한다. 이보다 먼저 우리 집 앞에 놓일 작품을 직접 결정한다.

헬싱키어반아트가 파실라 지역에 그린 그림. 마리아가 설명을 하고 있다.

지난달 헬싱키에서 만난 서 씨는 수용자를 넘어 활발히 도심문화를 만들어 내는 주최자가 된 헬싱키 시민의 활동을 소개했다.

서 씨가 헬싱키어반아트(Helsinki Urban Art)를 대표로 내세웠다.

헬싱키어반아트는 예술을 도시 환경과 삶에 도입하려는 단체다. 예술가 모임이 아니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야코 브롬베르그 대표는 일반인 집에서 전시 열기, 팝업 레스토랑 운영하기, 공장지대 문화로 개발하기처럼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도심 공간과 사람, 커뮤니티 공동체란 주제로 연결된다.

야코는 "전통적으로 공공예술은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의뢰된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더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공공예술은 단지 의뢰에 의해 만들어지는 작품이 아니다. 예를 들면 거리예술과 그래피티를 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 지역성을 띠고 주변 환경과 소통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면 공공예술이 아니라 단지 공공 공간에 놓여있는 예술일 뿐이다"고 설명했다.

▲ 헬싱키어반아트가 파실라 지역에 그린 그림.

이어 야코는 파실라 지역을 흥미롭게 이야기했다. 그는 "도시 예술에 대한 생각은 더욱 광범위해졌다. 우리는 파실라 지역을 거리예술 지역으로 변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것이다. 방향성이 잘 잡혀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된다"고 했다.

그가 말한 파실라 지역은 어떤 모습일까?

◇"개인 삶 자체가 예술이 되는 도시"

마리아 루흐타니에미(헬싱키어반아트 프로듀서)가 파실라 지구를 안내했다.

그녀는 "파실라는 회색 이웃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회색빛 도시다"고 했다. 헬싱키 중앙 도심에서 10분 정도 벗어났는데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콘크리트로 덮인 곳이었다.

헬싱키어반아트는 지난해 도시 모습을 바꿔야 한다며 12개 벽에 그림을 그려 예술 지구로 만들겠다는 제안서를 냈다. 그들은 몇 달간 기다렸고 시는 승인을 했다.

헬싱키는 그래피티(벽에 스프레이 페인트 등을 이용해 낙서나 그림을 그리는 장르)를 엄격히 금했다. 그래피티가 생겨날 때마다 제거했다. 처벌도 가했다. 하지만 도시 곳곳에서 생겨나는 그래피티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장려하기로 했다. 합법적인 장소를 내어주고 모든 시민에게 개방했다.

▲ 헬싱키어반아트가 파실라 지역에 그린 그림. 마리아가 설명을 하고 있다.

헬싱키어반아트는 지난겨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헝가리, 에스토니아, 폴란드 등에서 온 작가들과 다양한 스타일과 기법으로 페인트 작업을 벌였다.

마리아가 20㎞가 넘는 파실라 지역을 돌며 설명했다. 에스토니아 전통의상을 입은 할머니, 핀란드 탄생 설화를 그린 헝가리 작가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이었다. 지난 8월 주민들과 작은 파티를 열고 완성작을 기념했다.

그녀는 "주민들이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어서 완성됐으면 좋겠다며 아주 좋아했다. 우리는 단순히 회색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건 시민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더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드는 것이다"고 말했다.

헬싱키어반아트는 내년에도 시 승인을 받은 벽과 전봇대를 활용해 새로운 예술 거리를 만들 계획이다.

▲ 헬싱키어반아트가 파실라 지역에 그린 그림.

마리아는 파실라를 지나 바산푸이스티코 광장으로 안내했다. 이 광장은 마약 상인이 모이고 음침하다는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지난 6월 광장이 거리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됐다.

광장 바닥 그림은 거리예술 전문가 도움을 받아 누구나 그림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개 워크숍으로 진행했다. 주말 내내 주민 200여 명이 참여했다. 작가는 주민으로부터 수집한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냈고 주민들은 마음에 드는 그림을 직접 선택했다.

마리아는 인근 아파트에 벌인 작업도 설명했다. 입주민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작은 공간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작가에게 직접 의뢰했단다.

헬싱키어반아트가 파실라 지역에 그린 그림.

그녀는 "주민이 직접 작가를 찾아다니며 작품을 의뢰한다. 이 아파트는 따듯한 분위기로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단순한 벽화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야코는 최근 몇 년간 헬싱키시가 소속감과 자부심을 지닐 수 있는 시민 참여형 예술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청에 디자인과 대표직이 있을 정도로 고무적이라고 했다. '삶에서 행복을 어떻게 누리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으러 떠나온 핀란드에서 서 씨는 "개인의 삶 자체가 예술이 된다면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예술 자체가 아니다. 예술 형태로 발현되는 시민이며 시민의 삶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 헬싱키어반아트가 파실라 지역에 그린 그림.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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