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섭 지음…저자, 의사이면서 '사회역학'연구
바른 정보·자료 제시 '공론화'역할
"가난·동성애 편견 등 공동체 숙제"

지난 토요일 서재에서 책 한 권을 읽고 토론을 했다. 인간의 질병과 아픔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 즉 사회와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을 질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아니 우리가 고민했다기보다 그런 고민을 하고 연구를 한 책을 읽고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낙태 금지, 에이즈, 동성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가습기 살균제, 그리고 세월호. 이 책이 다루는 주제다. 저자 김승섭은 의대를 졸업한 의사다. 그러나 환자 개개인의 질병을 치료하지 않는다. 사회역학을 공부했고 위에서 언급한 주제들의 사회적 원인을 연구하거나 연구된 자료들을 알리고 자료를 바탕으로 예방할 수 있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다.

최근 서울 관악구가 전국 최초로 지하방, 옥탑방 전수조사를 했고 1381가구에 대해 기초생활보장, 차상위 의료, 차상위 장애인, 긴급지원 등의 공적지원을 했다. 2691가구에는 신속하게 현금과 현물 지원을 했다. 지하방과 옥탑방 실태 전수 조사를 지자체가 안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관악구가 전국 최초라는 것이 그것을 방증한다. 겨울이 오고, 옥탑방이나 반지하 월세방에서 가난을 견디다 못해 쓸쓸히 죽어갈지도 모를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행정은 큰 의미를 지닌다.

남아프리카 콰줄루나탈 시골지역은 우리나라 면적의 절반 정도에 10만 명이 사는 곳이다. 남아공에서 가장 가난한 곳이고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 감염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2012년 성인의 29%가 HIV 감염인이었다. 2000년 기준 남아공 성인 기대수명이 61.4세인데, 콰줄루나탈 시골지역의 성인 기대수명은 52.3세다. 2004년 남아공 보건부는 국제 원조비용을 이용해서 HIV 감염인 모두에게 치료약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치료가 시작된 지 7년 후 콰줄루나탈의 성인 기대수명은 다른 지역과 비슷한 61세로 증가했다.

가난한 나라 국민의 질병은 운명이고 숙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가 관점을 어떻게 두느냐, 어떻게 우리 사회(또는 나라)가 연대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수자 권리향상 축제 옆 동성애 반대 집회 지난 9월 23일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 문화광장에서 성 소수자 권리향상 문화행사 부산퀴어축제가 열리고 있다(사진 위). 동성애와 동성혼의 합법화를 반대하는 부산시민연대도 맞불 집회와 인간띠 잇기를 하고 있다(사진 아래). 경찰은 만일을 대비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성애는 치료해야 할 질병이고, 에이즈의 원인이 동성애이고, 에이즈는 불치병이다'라고 주장한다면 이 말은 모두 틀렸다. 동성애나 이성애 같은 성적 지향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성애가 당연한 것처럼 동성애도 소수의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의학계에서는 동성애자들에게 에이즈 유병률이 높은 것을 두고 동성애가 에이즈 원인이라 할 수 없다고 한다. 감염자와 성적 접촉 시 상처가 난다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구분 없이 감염될 수 있다. 에이즈는 치료약의 개발로 꾸준한 치료를 받는다면 만성질환 같은 질병이다. 중세 시대 페스트같이 걸리면 급속도로 전염시키면서 죽어야 하는 병이 아니다. 이런 잘못된 사실들이 소수자와 약자들을 움츠리게 만들고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이런 잘못된 정보와 오해를 연구 결과와 자료를 제시해 이해시키는 것이 사회역학을 다루는 저자의 역할이라고 했다. 개인의 질병과 아픔을 예방하거나 치유하기 위해 사회나 공동체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구성원들이 올바른 정보를 받아들이고 공론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올해가 두 달이 남지 않았다. 열심히 읽어야 앞으로 스무 권 남짓 책을 읽을 수 있다. 남은 두 달 동안 어떤 책을 더 만날지 모르지만 내가 올해 읽은 가장 '유의미한' 책이라 생각한다.

320쪽, 동아시아, 1만 8000원.

/이정수(블로그 '흙장난의 책 이야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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