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실력·열정만으로 성과 어려워
과학적 소양·연구협업·첨단인프라 필요

올해는 산악인 고상돈 씨가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77년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말과 함께 등정 소식은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되었고, 고상돈 씨는 국민적 영웅으로 환호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8848미터 세계 최고봉에 도전을 내민 지 6년 만에 세계 8번째 국가로 등정했고, 정상에 오른 등반팀이 겨우 14개에 불과했으니 국민적 환대를 받기에 충분했다.

<히말라얀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사람은 1953년 뉴질랜드 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이다. 이들의 첫 등정 이후 30년 동안 정상에 오른 사람은 158명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2003년 한 해에만 264명이 정상에 올랐고, 2006년 460명, 2016년 641명이 정상을 밟았다. 첫 등정 이후 2016년까지 64년 동안 4469명이 7646회 정상에 올랐는데, 등정의 90%가 최근 20년에 이루어졌다.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할 확률도 1990년 18%, 2000년 24%, 2012년에는 56%로 높아졌다고 한다.

이처럼 최근 들어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는 사람이 급격하게 증가한 결정적인 이유는 베이스캠프의 고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이스캠프는 장거리 등산을 할 때 식량·시설장비 등 많은 짐을 저장해 두고 대원들이 휴식할 수 있는 근거지 역할을 한다. 1970년대에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3000미터에 있었는데, 현재는 5000미터에 있다. 남쪽 베이스캠프는 5364미터, 북쪽 베이스캠프는 해발 5150미터에 있다. 심지어 여름 기간 북쪽 베이스캠프에는 차량 접근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을 향해 가는 중간에 전진캠프 4개가 설치되어 있어 이곳 캠프에서 산악인들이 휴식과 적응을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은 고산을 등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해진 연구목표를 달성하려고 다양한 연구방법 중에서 최적의 방법을 선택해 연구개발하는 것은 마치 산 정상에 도달하려고 다양한 등산 경로 중에서 최적의 경로를 선택해 오르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연구개발의 목표 달성 가능성을 높이려면 고산 등정과 같이 연구개발의 베이스캠프 고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에서 베이스캠프는 무엇일까? 필자는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국민의 소양(Scientific Literacy), 협업력이 강한 연구팀(Team Work) 그리고 최첨단의 연구인프라(R&D Infra)가 베이스캠프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소양'은 보편적인 과학 지식을 이해·활용할 수 있는 능력, 과학교육에 대한 흥미, 과학기술 투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말한다. '협업 연구팀'은 연구목표 달성을 위해 연구자들이 협동하고 연대하는 팀워크가 강한 연구개발 조직이다. '최첨단 연구인프라'는 연구개발 과정의 시험·분석·시범제작 등을 지원하는 장비와 시설들이다.

과학강국은 이러한 연구개발 베이스캠프가 높은 나라들이다. 높은 베이스캠프에서 연구개발을 시작하니, 우수한 연구성과를 빠르게 낼 수 있다. 특히,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여러 건의 우수 연구성과를 낼 수 있다. 한국인 연구자들이 한국이 아닌 미국·유럽 등에서 더 큰 연구성과를 내는 것도 베이스캠프의 고도 차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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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은 연구자의 실력·열정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한 국가의 과학적 소양, 연구 협업력, 우수한 연구인프라가 어느 수준이냐에 따라 연구 성과와 효율성은 결정될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에게 연구성과를 재촉하기에 앞서 우리의 연구개발 베이스캠프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과학기술계에서 수많은 고상돈이 나오길 기대한다면, 연구개발의 베이스캠프를 정상 가까이 올리도록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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