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에 도착해 택시를 잡아탔다. 라디오에서 낯익은 유행가가 들려 온다. 장단을 맞추며 잠시 눈을 감았는데 마치 ‘이곳은 진주입니다’고 말하는 듯 향토색이 짙은 노래가 귀에 들려 온다.

“촉석루 굽이돌아 진주 남강 흐르는데/ 이별의 눈물 자욱 의암에 얼룩졌네/ 세월이 흘러가면 잊을 날 있으련만/ 가슴깊이 스며드는 사랑이 뭐길래/ 아 오늘도 남모르게 불러보는 진주 아가씨”(하영상 작사·백봉 작곡 <진주아가씨>)

촉석루·남강·의암을 아는 사람에게 이는 단순한 노랫말이 아니다. 타향에서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침을 튀겨가며 자랑하던, 향수를 달래주던 명물들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타향살이>에서부터 시작된 애잔한 고향노래들은 타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끄집어 내어 주고 지친 마음을 달래 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새인가 고향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그리움이 희미해지면서 이런 노래들이 주춤하고 있다.

한국 향토 음악인 협회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 만들어진 단체.

충남의 향토작곡가 백봉(57) 선생을 중심으로 지난 97년 가을, 전국의 작곡·작사가 100여명이 뜻을 모아 만들었다.

이 중 벽천 하영상(47) 화백을 비롯, 5명의 도내 지역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전국에 음악협회는 많습니다. 그런데 향토·고향·지방색의 성격을 가진 단체는 보기 힘들죠. 여기에 요즘 젊은이들이 부르는 대중가요라는 것은 사랑 일변도이고요. 이런 현실을 좀 바꾸어 보고 싶어 만들었는데 고향 노래를 만든다는 자부심 하나죠. 벌이는 적어도 손놓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향토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 백봉 선생은 <탄금대 사연> <남한강 3백리> <월악산> 등 충북의 애향심이 묻어 나는 노래를 만들어 온 향토작곡가이다.

그리고 경남에서 활동하는 5명은 한국향토음악인협회 경남지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향은 산청이지만 진주에서 활동을 많이 해 제 고향이나 다름이 없지요. 진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 그림도 보면 풍속화가 많습니다. 화제(畵題)를 노래로 옮긴 거지요. <진주아가씨>는 1년여를 고민하고 만들었습니다.” 하화백의 말이다.

이렇게 해서 회원들은 1년에 한번씩 자리를 마련해 그동안 만든 작품을 서로 교환하고 수시로 백봉 선생과 만나 자신이 지은 가사에 곡을 붙여 달라고 하는 등 조금씩 고향의 명물들에 노랫말을 붙여주고 있다.

“경상도와 함안 땅에 우돌이는/ 인정있고 의리있고 사랑도 있어/ 고향 떠난 사람에겐 어머님 품속 같고/ 슬픈 일과 궂은 일엔 희망을 심어 주는/ 아 - 경상도 사투리로 사랑합니더 / 아리가야 - 아라가야를 사랑합니다”(안병상 작사·백봉 작곡)
지금은 고향 함안을 떠나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안병상(58)씨의 <아라가야>의 노랫말에는 고향 그리움에 대한 애절함이 담겨 있다.

우돌이는 함안을 상징하는 소이고, 30여년째 서울생활을 했지만 아직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투리는 고향의 정감이다.

“태어나기만 하고 거의 타향에서 살았지만 마음은 경남을 떠날 수 없었죠. 이제 조금있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이런 마음을 부족하나마 노래로 만들었다는 것이 기쁩니다.”

이는 지난해 고향사랑하기에 앞장서자는 뜻으로 충북에서 치러진 제1회 대한민국 향토 가요제로 이어졌다.

향토색이 짙은 노래를 부르는데 젊은 사람들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 행사를 치르면서 얻은 수확이었다.

“올해도 가요제를 열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어딜가도 당당할 것 아닙니까· 우리 고장엔 무엇무엇이 자랑이고 볼거리라고 부르기 쉬운 노래로 만들어 젊은 사람들에게도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을 심어 줘야 합니다. 옛 것을 지키고 소중히 할 줄 알아야 지금의 모습도 빛나 보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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