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서피랑 이야기] (7) 포스트잇 방명록
가족 이야기·연인과의 사랑…어느새 온 벽을 덮어버렸다
그 이야기가 하나하나 모여 서피랑의 일부가 돼버렸다

<서피랑이야기>를 연재하는 이장원 씨는 자칭타칭 '서피랑지기'입니다. 통영 서피랑은 동피랑 건너편에 있는 언덕인데 최근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명소입니다. 장원 씨는 개중에서도 유명한 99계단 바로 곁에 삽니다. 원래 예술 소품 제작·판매, 문화 기획 같은 일을 하다가 서피랑에 정착한 지금은 통영시 문화해설사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피랑공작소에서 지낸 시간도 어느새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잠시 돌이켜보니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것을 시도해왔던 것 같습니다. '통영관광일번지', '서피랑은 사랑입니다.', '서피랑을 만나면 행복해집니다.','Art For Your Life 쌀롱드피랑' 등 슬로건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중 몇 가지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피랑공작소에서 진행되는 행사를 한번 살펴볼까요. 테마가 있는 예술시장 '쌀롱드피랑'도 매주 토요일이면 열고 있고, 매년 9월 9일 '구구데이'행사, 매년 10월에는'서피랑시월愛음악회'가 열립니다. 주기적으로 하는 행사들이 하나 둘 그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서피랑도 조금씩 발전해가고 서피랑공작소도 진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방문객이 서피랑공작소에서 방명록을 쓰고 있다. /이장원

진행하는 과정에서 혼자서 외롭고 힘든 일들도 많았고, '왜 내가 지금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들도 종종 들곤 합니다. 그래도 늘 즐거운 것은 '이 공간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것을 만들면 기뻐할까' 하며 고민을 하는 일이지요. 새롭게 도전하는 즐거움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서피랑공작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며 만들어진 콘텐츠 중에서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서피랑방명록'입니다. 노트에 적는 방명록과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이는 포스트잇 방명록, 이렇게 두 가지 형식의 방명록을 함께 준비했었습니다. 붙이는 방명록은 인기 만점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안보이더니, 하나 둘 붙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산더미처럼 불어나 온 벽을 다 덮어버렸습니다. '어쩜 이런 곳에도 붙일까' 할 정도로 여기저기 구석구석 안 붙여 놓은 곳 없이 빼곡합니다.

서피랑공작소에 붙은 포스트잇 방명록.

서피랑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서피랑공작소도 소문이 나니까 자연스럽게 사람이 더 많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7월 초에는 KBS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고 싶다고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지난 9월에 방영된 <드라마스페셜 - 우리가 계절이라면>이라는 청춘 애정극이었습니다. 통영 곳곳을 배경으로 찍고 있다면서, 몇 개 신(scene)을 이곳에서 찍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는 흔쾌히 좋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 꼭 사극 등장인물처럼 생긴 KBS 신기라 섭외부장님께서 방문해서 협의한 후에 촬영을 했습니다. 서피랑공작소에서는 주인공의 어릴 적 모습과 성장한 후의 모습을 찍는 두 개 신을 촬영하기 때문에 벽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 좀 떼어달라고 부탁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시간 날 때 포스트잇 방명록을 거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두세 시간 정도 열심히 뗐는데, 생각보다 그 개수가 훨씬 많아서 진땀을 흘렸습니다. 많은 분의 추억이 담겨 있는 것이기에 따로 한곳에 모아 두었습니다. 떼느라 조금은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드라마를 촬영하는 동안 연예인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제가 활동하는 공간이 드라마로 나온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서피랑공작소에 붙은 포스트잇 방명록.

촬영이 끝나고 휑하게 비어 있던 벽면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원래대로 돌아오더군요. 옛말에 '비우면 채워진다'고 했는데, 새삼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9월 9일 구구데이를 기획하면서 공작소를 꾸미기 위해 포스트잇을 또 거둬들였습니다. 새롭게 꾸민 뒤에는 방명록을 9월 한 달 정도 보류했었는데 그것은 변화된 서피랑공작소에 어울리는 콘셉트로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10월부터는 나비 모양의 방명록으로 결정해서 다시 하나 둘 추억들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둬들여서 모아둔 방명록을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정리해두려고 꺼내봤는데, 너무 많아서 분류하는 데만 며칠이 걸리더군요. 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서피랑을 다녀간 분들의 소중한 추억의 흔적이기에 바람에 날아가거나 햇볕에 바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남겨두었습니다. 그건 바로 그 이야기들도 이미 서피랑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방명록을 정리하면서 살펴보니 그 내용도 천차만별입니다. 간략하게 분류하면 홀로 여행, 우정 여행, 가족 여행, 커플 여행, 통영시민 방문, 지인 방문 등 다양한 형태였습니다. 가족과 연인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 서피랑에 왔다 갔다는 흔적 남기기, 개인 소원(시험, 남친, 여친, 결혼, 애기, 로또 등), 외국인들의 방명록, 그림 방명록, 개인적인 느낌을 적은 방명록 등 굉장히 다양한 내용이 있었는데 뒤에 따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편지처럼 적은 짧은 글들이 참 좋게 와닿았는데, 앞으로 뭔가 이런 감성적인 내용을 좀 더 담을 수 있는 서피랑공작소만의 특별한 방명록이 만들어지도록 한번 연구를 해봐야겠습니다.

이번에 제가 방명록을 정리하면서 느낀 점은 조금씩이지만 서피랑공작소가 많은 분이 추억을 남기고 갈 수 있는 멋진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또, 이런 곳에 내가 있고 이렇게 하나하나 만들어갈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이곳을 다녀가신 분들이 다시 찾으실 때 의미가 되는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온 정성을 쏟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시민기자 이장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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