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슈퍼 할아버지 와달란 말 성가셔
핑계만 대는 내 모습, 내 마음의 한계

거래처에서 주문전화가 오는데, 언듯 어디인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주문한 게 석 달 전 같다. 희망슈퍼 몇 번 거래한 것도 아니고 갈 때마다 얼마 팔지도 못하고 반품만 많이 나온다. 가는 길에 있어도 방문하고 싶지 않은데 일부로 한참을 달려가야 한다. 고엽제 환자면서 알코올 중독자 할아버지와 교통사고로 뇌손상을 입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희망슈퍼다.

다른 거래처와 동떨어져 있어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좁은 골목길에 주차하기도 불편한데 빼빼로데이를 앞두고 있어서 바쁘다. 전화상으로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습관적으로 한다. 그나마 화요일에 방문하는 거래처와 제일 가깝다. 화요일 유난히 주문이 많다. 외곽순환도로는 막히고, 퇴근시간에 쫓기듯이 희망슈퍼를 건너뛰고 집으로 돌아온다. 세상이 더럽고 치사해도 난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살았는데. 누가 물어본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즘 같은 성수기에는 시간당 3만 원 이상을 벌어야 하는데 잘해야 본전인 희망슈퍼에서 두 시간을 허비하는 게 귀찮았던 게 사실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런 사람인 건데 그러면서 욕은 먹고 싶지가 않다.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서 그나마 나 같은 사람이 있어서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거라고. 적어도 나는 세상이 더럽고 치사해지는데 일조하지는 않는다는 건 말뿐이었던 모양이다.

하루가 지나서 희망슈퍼 할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 성가시다는 생각이 앞선다. 차라리 화를 내면서 몰아붙이면 내 마음에도 핑계삼아 됐다고 나도 거래하고 싶지 않다고 받아치고 싶어진다. 그런데 화내지 않고 부탁을 한다. 실은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해서 이달 말에 슈퍼를 그만둔다고 말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빼빼로, 껌, 과자들이 좀 있어서 정리하고 싶다고 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오지 않을 거 같아서 과자주문처럼 말한 거 미안하다고. 사실대로 말한다. 부탁한다고, 도와달라고. 몇만 원 되지 않을 거 같은데 그냥 버려도 되는 것들인데 정리를 하고 싶어한다.

할아버지들 절대 직접적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는 않는다. 그냥 내가 느낀 목소리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한 번도 남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살아오지 않은 분들이라서. 그분들이 힘들게 살아온 시대에는 미안하다는 둥, 사과한다는 둥 말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힘들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돈을 벌려고 방법을 찾았다. 그게 영업이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힘들고 불편한 게 그래서 남들이 중간에 포기하는 것들이 돈이 된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방법을 찾는 건 내게 이득이 될 때만이었던 모양이다.

손해가 온다고 생각하니 핑계만 만들어낸다. 없는 핑계가 생기길 기다리고 오늘 하루는 정말 시간을 낼 수 없었고, 또 내일은 영업할 지역이 다르고, 다음 주는 이미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상황을 만들려고 한다. 손해도 보지 않고, 욕도 먹지않고 여전히 나는 괜찮은 사람으로 남아서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서 나 같은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이 되어간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항상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몇만 원에 세상을 치사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할아버지와의 약속이 그랬다. 손해가 나지 않는 범위에서 돕겠다고. 내 마음의 한계인 모양이다.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게.

박명균.jpg

희망슈퍼 할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손가락으로 담배꽁초를 튕겨내던 내 모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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