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관 추모 문학심포지엄
김태홍·최명학 삶 재조명
저항·가난 등 세계관 탐구

제8회 창동허새비축제가 열린 지난 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어울림센터 지하 소극장에서 이선관 시인 12주기를 추모하는 문학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선관시인추모모임 주관으로 마련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시인이자 교육자, 언론인이었던 살매 김태홍과 가난한 노동자 시인 최명학 삶과 예술세계가 집중 조명됐다.

먼저 정훈 문학평론가가 '살매 김태홍의 시와 정신' 주제 발표를 통해 시인이 지천에 널린 시대에서 과연 시인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진정한 정체성에 대해 고찰했다.

1925년 창원시 소계동에서 태어난 김태홍은 진주사범학교와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을 졸업했다. 마산여고, 마산상고,(현 용마고) 부산고 등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부산일보>, <국제신문> 논설위원 등도 지냈다.

정 평론가는 3·15의거와 4·19를 노래하는 등 저항 정신이 부각된 김태홍의 시세계에서 정결하고 단아한 '서정시인'으로서 가치에 더욱 무게를 뒀다. 그는 "고향인 창원과 마산을 사랑했던 애향시인으로, 평생 교편과 시업(詩業)을 병행했던 당대의 선비였다"고 평했다.

김태홍은 1960년 4월 12일 마산만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찍은 신문 특집기사 옆에 시 '마산은'을 발표해 저항정신에 불을 지폈다. 검열과 폭압이 흔했던 시대 정황을 견디고 시적 함성을 발현한 점을 두고 정 평론가는 마산이라는 지역성과 특수성을 뛰어넘어 보편적이며 우주적인 세계관을 녹였다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김태홍의 초기 서정성과 관념적인 시 세계와 이후 사회성과 역사성을 띤 성향을 아울러 문학과 세계가 맺는 긴밀한 연결고리를 찾았다.

정 평론가는 "시와 시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귀족적 영역'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세계와 현실을 묻고 따지는 지적 노동에 미학적 형식을 더한 상태에서 움튼다. 그런 면에서 김태홍의 시는 충분한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진 주제 발표에서 배대화 경남대 교수가 가난한 서민이자 마산 수출자유지역 노동자였던 최명학(1952~2006) 시인의 시세계를 탐구했다.

지난 3일 열린 제8회 창동허새비축제에서 이선관 시인 12주기 추모 문학심포지엄이 개최됐다. 배대화 (오른쪽) 교수가 '최명학 시 연구를 위한 소고'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문정민 기자

배 교수는 특히 최명학과 한하운의 관계에 집중했다. 최명학의 시적 '모태'로 한하운(1919∼1975) 시인을 꼽았다. '문둥이 시인' 한하운은 나병환자로서 겪어야 했던 고통과 서러움을 시로 승화시켰다.

배 교수는 "최명학은 나병을 천형(天形)으로 여겼던 한하운과 가난을 천형으로 여겼던 자신을 동일시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최명학이 자전적 내용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 <낮게 날으는 작은 새> 주인공 명일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고 첨부했다. '그 천형의 가난 속에서 명일은 살이 썩고 문드러지는 아픔을 노래한 문둥이 시인처럼 시를 썼다.' 소설 속 구절은 최명학이 한하운에게 자신을 강하게 투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의식이 꾸밈없이 드러난 첫 시집 <소박데기의 노래>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시를 천형의 시인 한하운 씨에게 바친다' 부제를 단 시집 속 '시인'을 형성한 '붉은', '목숨', '천형', '문둥이' 등 시어들은 한하운의 시어들이 그대로 반영됐다.

배 교수는 "소외된 자의식의 갈망과 다짐이 주된 최명학에게 나병으로 인해 사회에서 추방된 삶을 살았던 한하운은 단순한 마중물 차원을 넘어 이상적 자아로 기능하고 있다"고 정의 했다.

마지막으로 배 교수는 민요시와 판소리 풍이라고 언급되는 최명학의 장시를 두고 가사문학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며 이에 대한 분석과 연구 필요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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